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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13 18:30 수정 : 2019.02.14 09:40

이용인
한반도국제 에디터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1월31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 강연은 대북 협상가로서의 ‘출사표’로 불릴 만한다. 내용 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과 실무진의 고민이 잘 버무려져 있다. 그리고 솔직하고 신중하며 사려 깊다. 상대방에게 신뢰를 줄 만하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비건 특별대표가 미국의 동부가 아닌 서부의 스탠퍼드대에서 첫 공개적인 대북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지난해 8월 특별대표로 임명된 뒤 처음이었고, 무엇보다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의 6일 협상을 위해 평양행을 앞둔 시점에서 ‘서부’를 강연 장소로 선택했다.

외교 문제에 있어서 미국 동부와 서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워싱턴이 위치한 동부 쪽 전문가들은 대외문제를 다룰 때 이른바 ‘전략적 사고’를 중시한다. 길게는 미국의 패권적 우위, 짧게는 미국의 주도권 유지를 사고의 우선순위에 둔다. 특히, 북한 문제의 경우는 전략적 사고를 넘어 감성적으로 북한에 강경한 전문가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유야 어떠하든 북한과의 협상 자체에 회의적이고, ‘협상 진전도, 급격한 긴장고조도 없는’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편이다.

이에 비해 태평양에 인접한 미국 서부 쪽은 중국 등 상대국을 최대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서부에 포진한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과의 협상 및 관여(인게이지먼트)를 강조하고 북핵 문제에 대한 기술적 전문성도 지니고 있다. 스탠퍼드대의 신기욱 교수,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 밥 칼린 국제안보협력센터 객원연구원, 그리고 서던캘리포니아대의 데이비드 강 교수 등이 그들이다. 밥 칼린은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 담당 국장 출신으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도 사석에서 그를 미국의 최고 한반도 전문가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서부 쪽 전문가들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동안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비주류’로 밀려났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 이에 호응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이에 맞선 북한의 긴장 고조 행위 등이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협상’을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적었기 때문이다. 서부 쪽 전문가들에 대해 워싱턴에선 기류를 잘 모르는 ‘아웃사이더’ 정도로 치부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비건은 이날 강연과 일문일답에서 헤커 박사를 비롯해 자신이 대표로 임명된 뒤 “멘토 역할을 해준” 칼린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표시하며 이들의 존재감을 키워줬다.

이런 맥락에서 비건 대표가 서부 쪽 대북 협상파들의 ‘메카’인 스탠퍼드대에서 출사표를 낸 것은 북한에 던지는 메시지가 작아 보이지 않는다. 과한 의미부여일 수도 있겠지만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어 보인다. 실제 강연에서 비건 특별대표는 “미국 행정부는 북한과 동시적·병행적으로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며 일방적인 핵폐기만을 요구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미 행정부 인사의 공개적인 접촉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는데도, 동부 쪽 전문가들만 선호하는 우리 쪽 연구기관들의 관성은 여전한 듯하다. 14~15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한 세미나를 비롯해 국책 연구기관이든 민간 연구기관이든 초청 인사나 협력기관은 거의 정해져 있다. 실무자들한테 왜 단골손님만 부르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윗사람들’에게 이름이 익숙한 사람을 골라야 한다고 했다. 기관장이 모르는 사람을 참석자로 섭외하려면 설득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 편하고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거였다. 이제 과감히 바꿔볼 때가 됐다. 그래야 새로운 발상을 수혈받을 수 있다.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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