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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2 16:29 수정 : 2019.06.13 09:33

이종규
디지털부문장

재작년 초,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이라는 칼럼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현직 부장판사가 쓴 글인데, 내 나름대로 제목을 붙여보자면 ‘부장님만 모르는 부장님의 꼰대질’ 정도가 되겠다. 마침 수년째 부서장을 맡고 있던 터여서 내 언행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었다. 어떤 대목에선 잘못을 들킨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칼럼을 스크랩해놓고 몇번이고 다시 봤던 기억이 난다.

이 칼럼이 다시 생각난 것은, 최근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접하면서다. 사실 나는 그동안 90년대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직접 부딪칠 일도 거의 없었다. 그 또래인 아들놈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씩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세대 문제라기보다는 부모 자식 간의 문제라고 여겼다. 그런데 얼마 전 회사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다 우리 회사에도 90년대생이 꽤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내 머릿속에 대학생 이미지로만 머물러 있던 90년대생이 어느덧 내 삶 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무심코 지나쳤던 <기자협회보> 기사(‘워라밸·젠더·공정이 최우선 가치…언론사에 90년대생이 온다’)가 새삼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불현듯 90년대생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존재들의 세계에서 함께 사는 법’이라는 표지 문구에 이끌려 이 책을 펼쳐들게 됐다.

이 책에 ‘90년대생’ 못지않게 자주 나오는 말이 ‘꼰대’다. 왜 아니겠는가. 젊은 세대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현실이 ‘꼰대들의 벽’일 테니. 내가 가장 유심히 본 부분도 ‘직장인 꼰대 체크리스트’였다. 23개 항목 중에서 ‘무려’ 1개만 해당해도 꼰대란다. 그럼 꼰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흥분하지 마시라. 이 체크리스트의 메시지는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는 거니까. 저자인 임홍택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개 이상은 무조건 체크하게 설계했다”고 털어놨다. ‘나도 꼰대가 될 수 있다’는 걸 인식하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내 ‘꼰대력’은? 부끄럽게도 체크한 항목이 7개나 됐다. 9개 이상이면 조금 심각한 꼰대, 17개 이상이면 중증 꼰대이므로 만일 이대로 꼰대화가 진행된다면 나도 머잖아 심각한 꼰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꼰대의식은 왜 생기는 걸까? ‘요즘 젊은것들’과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류 문명의 역사만큼이나 유구한 기성세대의 언어, ‘요즘 젊은것들’ 다음에는 예외 없이 비난하는 말이 나온다. ‘싸가지가 없어’ ‘약해 빠졌어’ ‘자기밖에 몰라’ 따위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못마땅하니 자꾸 무시하고 잔소리를 하게 된다. 때로는 모욕과 폭언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런 점에서 꼰대의식은 젊은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부정적인 인식에서 싹튼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달리 말하면 꼰대 있는 곳에 ‘싸가지 없는 젊은것들’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기성세대가 ‘젊은것들’을 삐딱하게 보는 이유는 자신의 과거 경험을 기준으로 현재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나 때는 말이야’가 상징하는 것은 낡은 관성이다. ‘그보다 더한 일도 참고 해냈어’ 따위의 빛나는 무용담 뒤에는 ‘본전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나 때는 이랬으니 너희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 얼마나 퇴행적인가.

앞으로 내 주변에는 ‘낯선 존재’들이 시나브로 늘어날 것이다. 지난 주말 <한겨레> 수습기자 공채 현장평가에서 만난 지원자들도 대부분 90년대생일 것이다.(블라인드 테스트이기 때문에 평가위원들도 지원자의 나이를 알 수 없다.) 이 낯선 존재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려면 무엇보다 기성세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꼰대와 ‘젊은것들’ 사이에서 가해자는 주로 꼰대이고, 문제를 풀 열쇠를 쥔 쪽은 대체로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임홍택씨가 책에서 지적했듯이 꼰대질이 심해지면 괴물이 될 수 있다. 좋은 동료가 되지는 못할망정 괴물로 변하지는 말자는 다짐을 해본다. 공존을 위한 첫걸음은 ‘다름을 인정하기’가 아닐까 싶다.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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