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16 17:48
수정 : 2019.06.17 13:24
|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방문요양보호사가 노인이 스트레칭하는 것을 돕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애는 누가 키우냐고 누가 물으면 “돌봄노동자요”라고 답하곤 했다. 보육교사들은 놀라운 존재였다. 아이들을 키운다는 자긍심과 책임감이 없다면 그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서울형’ ‘국공립’이라는 단어는 이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을 거라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집에서는 또 다른 돌봄노동자들에게 의지했다. 50~60대 중국동포 ‘이모님’들이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어린이집·유치원 학대 사건이나 부실 급식에 분노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회적 문제’일 뿐이었다. 요컨대, 나는 돌봄노동자들이 아이를 잘 돌봐주면 그만이었고, 운이 참 좋았던 것이다.
부모님은 누가 돌볼 거냐는 물음에는 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돌봄노동자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뿐이다. 구체적으로 고민을 하다 보면 부모를 요양원에 모셔도 되는 걸까 싶은 죄책감, 요양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좋은 요양원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러고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서둘러 끝맺고 만다. 요컨대, 그곳에서 일하는 돌봄노동자에 대해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5월13일부터 6월7일까지 <한겨레> 창간기획 ‘
돌봄 orz: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총 8회를 연재하는 과정은 돌봄노동자에 대한 이런 무책임한 태도를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요양원이라는 ‘감옥’에 갇힌 노인들, 착취당하는 요양보호사들을 다룬 1부 기사가 시작됐을 즈음엔 편집국에서도 여러 지적과 충고를 받았다. 요양원을 너무 나쁜 곳으로만 묘사한 것 아니냐, 재가요양을 받는 노인들의 ‘갑질’만 너무 부각한 것 아니냐, 요양원에 부모 모신 사람들의 심정도 헤아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 등등. 사실 어떤 기사든, 기사에 등장하는 개별 사례는 기사가 얘기하려는 ‘목표’가 아니다. 현실에는 좋은 요양원도 있고 나쁜 요양보호사도 있으며, 노인들은 갑질을 하기도 하고 학대를 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와 제도를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 그걸 바꾸지 않은 채 요양원장의 ‘선의’와 요양보호사들의 ‘중노동’에 기대어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것은 정말이지 무책임한 일이다.
정부가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한 게 2008년이다. 필요한 일이라 하긴 해야 하는데 막대한 돈이 들어가니 대부분을 민간에 맡겼고,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의 속성과 무한경쟁 탓에 비리와 노동 착취가 예상됐음에도, 그냥 내버려둔 채 10년이 넘었다.
‘요양보고서’ 3부 1회에서 전한 서울요양원은 이상적인 대안 모델이다. 전국 장기요양기관 2만여곳 중 이런 국공립 시설은 1.1%뿐이다. 대기자가 수천명인 국공립 기관을 몇 곳 운영하며 국가가 짐짓 걱정하는 척하는 사이, ‘요양촌’ 건물 층층마다 노인들은 말없이 세상을 떠나고, ‘돌봄노동 국가자격증’을 딴 중년 여성 노동자들은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돈을 받지도 못한 채 지쳐 쓰러진다. 장기요양보험 기금은 고갈되고 있다. 노인 인구는 더 급격히 늘어나 2025년 1천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불과 6년 뒤다.
좀 더 시끄러워져야 할 때가 아닐까. “모르고 싶고, 알아도 모르는 척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3부 2회)을 마주하고, 솔직한 얘기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 사립 유치원 문제는 ‘정치하는엄마들’이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를 이끌어내면서 공론화했다. 그러나 전국적인 분노가 들끓고 정부가 뒤늦게 나섰음에도 ‘유치원 3법’은 국회에서 아직 처리되지 않고 있다. 하물며 노인 돌봄 문제도 늦으면 늦을수록 풀기 어려워질 것은 자명하다. 더 늦기 전에 어떻게 존엄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지, 민간 요양원에 대한 강력한 관리감독 시스템을 어떻게 마련할지, 재원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세대 간 연대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지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돌봄 시스템의 기본은 돌봄을 맡는 노동자라는 인식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 어떤 시스템도 일하는 사람이 자긍심을 갖고 행복해야 잘 돌아간다. 일하는 사람을 돌보지 않는 돌봄 시스템은 잘못된 것이다.
이지은
정치사회에디터
jieuny@hani.co.kr
▶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바로가기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