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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6 18:11 수정 : 2019.06.27 14:12

신윤동욱
사회정책팀장

1969년 6월28일은 하나의 세계가 시작된 날이다.

이날 미국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스톤월 인’을 습격한 경찰에 맞서 게이, 트랜스젠더, 레즈비언 등 성소수자들은 동전과 돌멩이를 던지며 저항했다. 심심하면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곳에 ‘삥 뜯으러’ 오는, 걸핏하면 정해진 성별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고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감금하는 경찰을 향한 분노가 불타오른 밤이었다. 저항의 소문을 듣고 달려온 뉴욕의 성소수자들은 거리에서 입고 싶은 옷을 입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생면부지의 퀴어들과 함께 그리니치빌리지를 해방구로 만들었다. 심야에 타오른 저항의 불길은 이내 미국 곳곳으로 퍼져가 ‘스톤월 항쟁’이 되었다.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된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은 ‘스톤월 항쟁’을 유머를 섞어 ‘석벽대전’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성소수자 운동이 본격화되고, 전세계에서 현대적 의미의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시작됐다. 다음해부터 이날을 기념해 뉴욕,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자긍심 행진이 시작됐다. 반세기 동안 행진은 세계로 퍼져 나가 6월이면 전세계 수많은 도시에서 퀴어 퍼레이드가 열린다. 이렇게 퀴어 퍼레이드는 주어진 행사가 아니라 쟁취한 날이다. 스톤월 항쟁 50주년인 올해에 서울 퀴어문화축제도 20회를 맞았다.

스톤월 이후 가까운 친구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는 1980년대 에이즈 시대를 견뎠고, 군대에서도 커밍아웃이 허용되는 2000년대를 만들었고, 동성결혼이 지구화된 2010년대 후반이 되었다. 미국과 한반도 사이의 거리처럼 20여년의 시차가 있지만, 이런 역사는 서구 성소수자들만의 추억은 아니다. 지난 25년 한국의 퀴어들도 조국의 압축성장 같은 압축된 변화를 경험했다. 서울 퀴어문화축제를 초기부터 기억하는 이들에게 에이즈로 아프게 잃은 지인 한명,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구 한명이 없는 경우는 드물다. 성소수자 운동은 지난 20여년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사회운동 분야였지만, 2007년 이래로 차별금지법 제정이 10년째 지체되는 상황도 겪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거듭된 요구에도 오래 침묵하던 뉴욕 경찰이 지난 6일 50년 만에 마침내 사과했다. 외신에 따르면, 제임스 오닐 뉴욕경찰국장은 이날 ‘스톤월 인’ 급습을 언급하며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다. 당시 뉴욕 경찰의 행동은 명백히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경찰의 조치와 법이 차별적이고 억압적이었다. 그 점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반세기 만에 공권력에 얻어낸 역사적 사과는 공식 역사가 스톤월을 ‘폭동’에서 ‘혁명’으로 바꾸는 데 기여할 것이다.

서울의 유월도 퀴어 퍼레이드와 함께 시작됐다. 지난 1일 지하철역에 내려 축제가 열리는 서울광장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여러 반대세력의 집회를 스쳐야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퀴어문화축제 척결’ 깃발 아래 군복을 입은 이들이 북을 치고 있었고, 광장 입구에는 어김없이 손팻말을 든 이들이 보였다. ‘동성애자를 미워하지 않지만 동성애는 죄악입니다.’ 매해 광장에 들어갈 때마다 마주치는 팻말이다. 광장을 둘러싼 여러 반대 세력도 저마다 집회마다 주장이 다르고 나름의 스펙트럼이 있지만, 결국엔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것이다.

이들의 요구대로 ‘가만히 있으라’를 실천하는 분들이 있다. 바로 국회다. 20대 국회가 임기 막판을 향해 가고 있지만, 차별금지법안은 한 건도 발의되지 않았다. 이명박근혜 시대의 국회에서도 발의는 되던 법안이었다. 발의조차 문제 삼는 세력의 공세에 시달리다 발의한 의원들은 법안을 스스로 철회했다. 어차피 상임위 논의도 되지 않아 자동 폐기될 운명이었던 법안을 철회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20대 국회의 침묵은 이런 학습 효과다.

‘침묵은 죽음이다.’(Silence Is Death)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고전적 구호다. 여성, 이주민, 청소년 등 지금 여기의 모든 소수자에게 여전히 의미심장한 말이다. 침묵 당하지 않겠다는 이들의 행렬은 오는 29일 대구 퀴어퍼레이드로 이어진다. 스톤월의 소란은 50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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