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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1 17:29 수정 : 2019.07.21 20:25

이지은
정치사회에디터

자유한국당의 ‘엉덩이춤 사건’은 새삼 비판할 것도 없다. 거의 모든 언론이 한목소리로 혀를 찼다. 한국당은 <한겨레>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속옷’이라는 표현과 ‘황교안 격려사’를 문제삼았다. 지난 16일 중재위에선 ‘조정 불성립’ 결정이 났다. <한겨레>만 제소한 이유는 접어두고, 황교안 대표의 격려사를 생각하면 지금도 안타깝다. 여성 당원 행사에서 젠더 감수성 떨어지는 황당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는데, 그런 격려사를 하다니….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는 얘기다.

황 대표가 “대단히 잘못”이라고 사과한 일이 있다. 2015년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다. 2004년 부산지검 재직 시절 기자간담회에서 ‘부산 여자들이 드세다’고 발언한 게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청문회를 통과해야 하니 고개를 숙였던 걸까?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엉덩이춤 사건’에 대해 사과하는 게 나을 듯싶다.

‘젠더 감수성 제로’ 언행은 여의도에서 ‘낯익은 뉴스’다. 최근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 가정폭력 사건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베트남 여성 선호’ 발언이 생각났다. 패스트트랙 수사 소식을 접할 때면 문희상 국회의장이 임이자 한국당 의원의 볼을 감싸던 장면이 떠오른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달창’이란 단어를 입에 올렸다.

취재 일상에서도 젠더 감수성 떨어지는 말과 행동을 숱하게 접한다. 내가 출입하던 때와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물어보면,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렇게 미인인데 힘들어서 어떡하냐,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 잘해야 한다고 ‘걱정’해주는 건 ‘고전적’이다. ‘요즘은 러브샷 하면 안 되는데’라며 러브샷 하자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난이도를 조금 높여보자. 여당 고위직 인사가 식사 자리에서 여성 기자들에게 먼저 술을 따랐다. “미래에 퍼스트레이디가 될 분들”이라면서. 한 기자가 “저는 대통령 될 건데요”라고 받아쳤는데, 그는 무슨 뜻인지 모르는 표정이었다고 한다. 관객 천만을 넘긴 2019년판 <알라딘>을 보시라. 디즈니 공주가 술탄이 되겠다고 하는 세상이다. 공주는 새로 들어간 싱글곡 ‘스피치리스’(speechless)를 부른다. 침묵하지 않을 거야!

‘엉덩이춤’부터 ‘퍼스트레이디’까지 젠더 감수성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은 다양하다. 상식의 수준에서 대다수가 ‘문제다/아니다’를 판단할 수 있는 사안도 있지만, 상황의 맥락을 고려하면 무 자르듯 평가하기 어려운 것도 있기 마련이다. 어려운 주제다.

최근 편집국에서 동료들과 몇차례 작은 토론을 했다. 야근 상황에서 광주세계수영대회 아티스틱 스위밍 한국 대표팀의 역동적인 모습을 담은 1면용 사진이 들어왔다. 혹시 선정적으로 보이냐는 의견이 있어 여럿이 함께 들여다봤다. 지나치게 ‘자기검열’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여성 수영선수들을 남성 중심 시각에서 관행적으로, 아름답게만 찍어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여성들만 참여하는 대표적인 종목인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양성평등 정책으로 2015년 러시아 대회부터 ‘혼성 듀엣’이 생겼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제목과 기사에 ‘여신’ ‘여직원’이란 단어를 쓴 것을 놓고도 토론했다. 맥락상 이 단어들을 사용한 취지는 이해되나, 굳이 저 단어를 쓰지 않고 대안을 찾아볼 수는 없냐는 사내외 의견을 전해 들었다. 결론적으로 ‘여직원’이란 표현은 그대로 남았다. 나는 기사의 취지를 보여주기 위해 저 단어가 필요하다고 여전히 생각하지만, ‘굳이 저 단어를 쓰지 않고’라는 문제제기를 계속 곱씹어보게 된다. 여의도의 젠더 감수성은 왜 나아지지 않을까. 뒤떨어진 젠더 감수성에 대한 비판을 ‘정치적 공격’이라고 뭉개면 편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는 게으른 탓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거나,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다가 ‘하지 말아야 할 언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부지런히 배우고 변하지 않으면, ‘침묵하지 않을 거야’라고 외치는 이들에게 ‘시대착오적 구태 정치인’으로 남을 뿐이다.

jieuny@hani.co.kr

디즈니 실사영화 <알라딘>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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