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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31 18:17 수정 : 2019.07.31 21:43

신윤동욱
사회정책팀장

“사람을 앉은뱅이로 만들어요.”

몇해 전 서울역 근처 쪽방촌의 마을 공동체 ‘동자동 사랑방’에서 만난 중년 남성에게 들은 이 말이 오래 잊히지 않는다. 당뇨가 심해 일을 하기 어려운 그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는 지원으로 살아가는데, “그걸로 겨우 먹고는 살지만, 어디를 가지도 못하고 누구를 만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동의 자유를 제약당하는 이들은 이동할 때 최대한 돈을 아껴야 한다. 쪽방촌의 가난한 이들이 굳이 서울역 근처 같은 중심지에 모여 사는 이유다.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는 지난 30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중생보위)가 열리는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에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이 모여서 기자회견을 했다고 전한다. 이날 발언에 나선 수급자들은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도 어렵고, 타인과 만나는 일도 차단하는 급여 수준에 대해 토로했다고 한다.

중생보위는 해마다 이듬해의 최저 보장수준을 정한다. 생계급여 인상의 기준이 되는 ‘기준 중위소득’을 정하는데, 이날 열린 회의에서 내년 4인 가구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생계급여가 월 최대 142만4752원으로 정해졌다. 기준 중위소득을 정하는 통계를 무엇으로 하느냐 논란을 벌이다 결국 4인 가구 기준 올해 월 461만3536원에서 474만9174원으로 2.94% 인상을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4인 가구 생계급여 기준선은 올해에 견줘 내년에 4만원가량 오른다. 중생보위가 열리는 회의장 앞에 모인 이들이 외친 대폭 인상 요구는 그렇게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해마다 조용히 결정된 기준 중위소득 인상률은 생각보다 낮다. 기초생활보장을 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 등으로 나눈 2015년 이후 인상률을 보면, 2016년 4.00%, 2017년 1.73%, 2018년 1.16%, 2019년 2.09%였다. 2020년 인상률까지 더하면 5년간 평균 인상률은 2.38%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여전히 낮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은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기준 중위소득 인상률이 1999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 이후 가장 낮다고 분석한다.

기초수급자 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지 않는 중생보위에서 결정된 이 금액은 많은 이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동자동 사랑방에서 만났던 그 남성 같은 1인 가구의 내년 생계급여 상한은 52만7158원, 주거급여를 따로 받는다 쳐도 한달을 버티기 버거운 돈이다. 한달 최대치가 142만4752원인 4인 가구는 1인당 30만원이 안 되는 돈으로 한달을 살아야 한다. 숫자를 곰곰이 곱씹어도 도저히 이 숫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잘 그려지지 않을 때가 있다.

지난 12일 새벽에 결정된 내년 최저임금은 8590원, 전년 대비 인상률은 2.87%였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종 시한으로 말한 15일까지 최소한 2~3일은 더 논의를 하고 결정될 것이란 전망을 뒤집고 최저임금위원회는 예년보다 빠른 속도로 2020년 최저임금을 결정했다. 이미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이 대통령, 부총리 등의 발언을 통해 대세로 굳어진 상황에서 이따금 사람들이 ‘올해 최저임금 인상폭은 어떻게 될까?’ 물으면 답하기 어려웠다. 되었으면 하는 숫자와 될 것 같은 숫자 사이의 간극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지곤 했다. 이날 새벽 6시 밤새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리는 세종청사를 지키던 노동 담당 기자의 전화가 울리고, 2.87%라는 숫자를 들었지만 그냥 그렇구나 싶었다. 내년 물가인상률과 경제성장률 추정치를 더한 것보다 낮은 숫자라는 분석을 보고 그 의미가 조금 와닿았지만, 최저임금 인상률이 곧 내년 임금 인상률인 사람들에게 2.87%가 어떤 의미일지 충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노동, 교육, 복지, 여성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들과 함께 사회정책팀을 하면서 정부가 결정하는 숫자들을 전할 때가 자주 있다. 지난 1년 담당 기자들이 작성한 기사에 흐뭇한 숫자가 적혀 있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 이 숫자들에서 이 사회가 변하고 좋아지고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단 것이다. 포용국가, 노동존중 정부의 여러 위원회가 최저선의 사람들에게 제시한 숫자의 의미를 오래 곱씹게 될 것 같다.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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