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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7 18:21 수정 : 2019.11.18 14:19

김경욱 ㅣ 전국2팀장

은행잎이 지고 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벌써 여섯해째다. 샛노란빛을 또렷하게 발산하던 잎은 거리 곳곳에 흩뿌려져 세상과 작별하는 중이다.

‘그해’ 여름, 서울 여의도 국회 앞마당에는 은행잎과 무척이나 닮은 노란 종이배가 피어올랐다.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떠나보낸 엄마·아빠들이 고이 접은 것들이다. 그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회 본청 앞에서 한뎃잠을 자고 단식을 이어가며 이 배를 접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해달라”는 부모들의 다급한 요청에 당시 정부와 여당은 납득할 만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사실상 침묵했다.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야당도 무력했지만, 진상규명을 가로막으려는 여당 의원들의 훼방이 특히 노골적이었다. 그들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았다. 그 현장에서, 나는 똑똑히 보았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부모들을 ‘노숙인’에 빗대고, ‘국가 경제가 침체하니 애국심을 발휘(해 침묵)하라’고 윽박지른 것도 그들이었다. ‘조류인플루엔자’나 ‘교통사고’에 세월호 참사를 비유하기도 했다. 그 ‘야만의 시간’ 속에서 희생자 부모들이 딛고 선 땅에선 종이배가 움트듯 피어났다.

그 배에는 ‘별’이 된 아이들을 향한 부모들의 감출 수 없는 마음이 꾹꾹 새겨져 있었다. “잊지 않을게. 엄마·아빠가.” “여행이 너무 길구나. 보고 싶다.” “엄마가 몸이 많이 안 좋아. 밤마다 운단다. 부디 좋은 데서 푹 쉬거라, 우리 딸.” 부모들은 종이배를 접으며 울었고 편지를 쓰며 울었다. 치솟는 울음을 이를 악물어 참아내다가도, 끝내 아이 이름을 부르며 무너져내렸다. 한여름의 장맛비가 종이배 위로 쏟아졌다.

‘왜 세월호는 침몰했는가?’ ‘왜 국가는 국민을 구조하지 않았는가?’ 이 단순한 물음에 정부는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대신 보상금으로 그들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고, 군을 동원해 그들을 사찰했다. 그해 가을 시정연설을 하러 국회를 찾은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그곳에서 농성 중인 유가족들을 향해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의도적인 무시였다. 유가족들은 그런 대통령을 향해 “살려주세요”라고 울부짖었다.

‘이게 나라냐?’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응집된 시민들의 이러한 분노는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며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킨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그 기반 위에 문재인 정부는 탄생했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의 옷깃에서, 가방에서, 에스엔에스(SNS)에서, 메신저 프로필 사진에서 하나둘씩 노란 리본이 떼어졌다. “잊지 않겠습니다”란 약속도 희미해졌다.

세월호 참사는 누구나 아는 사건이지만 누구도 모르는 사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304명의 생명을 앗아간 참사를 둘러싼 진실은 여전히 수면 아래에 있다. 침몰 원인에서부터 정부 대응과 지휘체계 문제점, 청와대 외압에 따른 검찰 수사 축소 의혹 등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유가족들의 시간은 여전히 ‘그날’에 멈춰 있다. 5년7개월이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참사 당시 수색·구조·이송의 총체적 부실이 거듭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세월호 참사 당일 정부가 맥박이 뛰는 단원고 임경빈군을 발견하고도 헬기가 아닌 배를 태워 병원 이송까지 5시간 가까이 지체했고, 현장을 오가던 헬기에는 해양경찰청장 등이 타고 있었다’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새롭게 나왔다. 드러나지 않은 진상과 가려야 할 책임 소재 가운데 새로운 사실 하나가 힘겹게 확인된 것이다. 검찰도 최근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을 꾸려 재수사에 나섰다. 그동안 검찰, 감사원, 국회가 저마다 수사, 감사, 국정감사 등을 벌였지만 꼬리 자르기 식 수사 등으로 국민 대다수가 수긍할 만한 진상·책임자 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이번에는 반드시 달라져야 한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국민의 염원 속에 문재인 정부는 탄생했다. 이제는 ‘이게 나라다’라는 것을 보여줘야 할 때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무엇인지 증명해내야 한다. 그게 국가의 존재 이유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의 약속처럼 잊지 않아야 한다. 다시, 또, 은행잎이 지고 있다.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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