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23 22:15
수정 : 2007.05.23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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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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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즐기는 재주는 서울의 구청장들이 공기업 감사들 못지 않았다. 이구아수 폭포는 기본. 여기에 더해지는 마쿠쿠 사파리, 리우데자네이루 해변과 코르코바두 언덕, 이파네마 해변, 마추픽추, 안데스 산맥 …. 서울 관악·도봉·동대문·마포·성동·송파·은평구 등 일곱 구청장들의 ‘선진 복지·환경 시찰을 위한 구청장협의회 해외연수’ 일정은 웬만한 남미여행 패키지 상품보다 훌륭하다.
국민 세금으로 남미를 다녀오기는 구청장들이나 공기업 감사들이 한가지였지만, 외유성 출장에 대한 비난 여론에 반응하는 방식은 크게 달랐다. 감사들 가운데 일부는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하거나 사표를 내는 등 부산을 떤 반면, 구청장들은 13일 동안의 일정을 ‘완료’하고 23일 저녁 당당히 귀국했다. 이호조 성동구청장은 인천국제공항에 마중나온 구청 직원 10여명의 호위를 받으며 승용차에 올랐고, 김효겸 관악구청장은 “후진국에도 배울 것이 있다. 외유라고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구청장들의 ‘대범함’은 선출직이라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또 구청장과 구의원들이 한나라당 일색인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현재 서울의 구청장 25명은 모두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고, 전체 구의원 419명 가운데 3분의 2에 가까운 261명이 한나라당 소속이다. 견제장치가 작동할 수 없는 환경이다. 공기업 감사들을 닦아세우는 대부분의 언론도 웬일인지 이들에겐 너그럽기만 하다.
오는 25일 주민소환제가 처음 도입된다. 풀뿌리 시민단체와 민주노동당 등은 단단히 벼르고 있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마추픽추 사진을 깔아놓고 평생 한 번이라도 그곳에 가보기를 꿈꾸는 유권자들이 대범한 구청장들의 ‘혈세 여행’을 너그럽게 ‘용서’할지 주목된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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