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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05 19:50 수정 : 2013.07.05 22:40

낙하산 인사.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현장에서

예순을 훌쩍 넘은 아버지는 엉엉 울었다. 몇 마디를 채 말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국립대구과학관이 직원 공개채용에서 공무원과 공무원 자녀를 무더기로 합격시킨 사실을 <한겨레>가 처음 보도한 지난 3일 기자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아들이 대구과학관 공개채용에서 떨어졌다고 밝힌 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연신 흐느꼈다. “줄도, 빽도, 돈도 없는 나 같은 사람들 자식은 이렇게 살아야 할 수밖에 없는 겁니까?”, “내가 분해서, 이거 어떻게 좀 비리 꼭 밝혀주세요.” 5분 넘게 통화하며 그가 남긴 건 두 마디였다. 나머지는 북받치는 울음뿐이었다. 위로할 틈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제 이름은 알려지지 않게 해주세요.” 앞으로 아들이 취직하는 데 혹시나 불이익이라도 당할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같은 날 오후 확인 취재를 위해 당시 곽아무개(59) 대구시 신성장정책관실 정책관(4급)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구과학관 업무를 관장하는 부서장인 그의 딸(25)은 대구과학관 면접전형에 최종 합격했다. 곽 정책관은 “나는 이번 채용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공무원 자녀는, 그러면 취직도 할 수 없다는 거냐”고 항변했다.

‘37.5%(이번 공개채용 면접 합격자 24명 가운데 공무원 5명과 공무원 자녀 4명이 차지한 비율)라는 수치를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 반문했다. 곽 정책관은 “딸이 자신의 능력으로 합격한 것뿐”이라는 답변을 거듭했다. 그는 4일 직위 해제됐다.

합격자의 아버지는 자녀가 유능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탈락자의 아버지는 자신이 무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기관인 국립대구과학관처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보조금·사업비 등으로 세금을 지원하는 기관은 채용 때마다 입방아에 오르내리곤 한다. 예산이라는 기관의 ‘생명줄’을 쥔 정부나 지자체 공무원들의 영향력이 워낙 결정적인 탓에, 취직하려면 간부 공무원 ‘줄’을 잡는 게 가장 확실하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공공기관이나 다름없는 대구과학관은 구직자들이 매우 선호하는 곳으로 꼽힌다.

대구과학관은 미래부와 대구시가 설립 예산과 운영비를 모두 지원한다. 대구시의 담당 공무원 자녀 합격에 비판이 집중되면서, 미래부에서 대구과학관 업무를 해온 서기관과 농업연구관이 대구과학관 면접에 합격한 것은 상대적으로 묻혔다. 두 사람은 사표를 쓰기로 하고 대구과학관에 지원했다는데, 사전에 합격을 보장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대구과학관은 필기시험 없이 서류 전형에서 300명 넘는 구직자 가운데 67명을 선발했고, 면접으로 24명을 뽑았다. ‘블라인드 전형 규정’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면접관 5명 가운데 곽 정책관의 직속 이아무개(58) 대구시 과학기술담당(5급)이 참여했다. 상관 딸을 면접한 그는 채점표에 어떤 점수를 적었을까.
김일우 기자

“무늬만 공개채용”, “고려·조선시대 양반 자제를 시험 없이 뽑는 음서제도의 부활”이라는 의혹과 비판을 벗으려면, 대구시와 미래부는 이번 채용 과정의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책임을 선명하게 밝혀야 한다. 재발 방지 대책도 단단히 내놔야 한다. 그래야만 공무원 자녀라도 ‘공직에 취직하는 것’에 떳떳할 수 있고, 탈락자 아버지는 자신의 무능을 더는 탓하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구/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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