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특검’ 등을 요구하며 분신 자살한 이남종씨 시민장례위원을 맡고 있는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오른쪽)와 최현국 목사가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인의 유품 가운데 불에 타다 남은 일기장을 공개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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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죽음의 이유는 명백해 보였다. 이남종(41)씨는 지난 12월31일 오후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 서울역 앞 고가도로 위에서 ‘박근혜 사퇴’, ‘특검 실시’라고 적힌 펼침막들을 난간에 내건 뒤였다. 그의 죽음은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을 은폐하려고만 하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정치적 저항을 뜻한다고, 펼침막을 본 이들은 여겼다. 적어도 경찰의 보도자료가 나오기 전까진 그랬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이씨가 서울 한강성심병원에서 숨진 지 3시간여 만인 1일 오전 10시50분께 보도자료를 뿌렸다. “현재까지 수사한 바로는 ‘부채, 어머니의 병환’ 등 복합적인 동기로 분신을 마음먹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씨가 신용불량 상태에서 빚독촉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경제적 이유 말고는 분신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이씨 동생의 진술도 보도자료에 실었다. 이씨는 분신 현장에 일기장을 남겼다. 표지는 타버렸지만 안에 담긴 유서는 고스란히 남았다. 경찰은 분신 직후 이 일기장을 확보했다. 경찰이 2일 유족에게 넘겨준 유서에는 분신의 계기가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총칼 없이 이룬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전복한 쿠데타 정부입니다. 공권력의 대선개입은 고의든 미필적 고의든 개인적 일탈이든 책임져야 할 분은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보이지 않으나 체감하는 공포와 결핍을 제가 가져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경찰은 보도자료를 내기 전에 이씨의 일기장을 확보하고도 분신의 진짜 이유를 은폐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이씨의 ‘정부에 대한 불만’에 대해서는 “다이어리 뒷부분에는 ‘안녕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17줄에 걸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부도 묻기 힘든 상황입니다’라고 시작하여 정부에 대한 불만 내용이 들어 있는 메모 글이 있어 최근 대학가에 붙은 대자보와 유사한 방식으로 글을 쓴 것으로 보여집니다”라고 적었을 뿐이다.
이재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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