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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26 19:47 수정 : 2014.11.26 22:39

현장에서

“좋은 얘기만 하면 의미가 없다. 통상관료들이 열심히 일하면서 미처 생각 못한 얘기, 쓴소리도 좋고 도움이 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얘기를 해주시면 된다.”(안세영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장)

2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는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등 세 가지 이슈를 두고 통상관료와 민간 전문가들이 의견을 나누는 자문회의가 열렸다.

이 자문위는 이른바 ‘통상절차법’이 설치를 의무화한 기구다. 통상정책 수립과 협상 과정에서 산업부 장관 자문을 하게 돼 있어 회의 대부분은 비공개로 진행된다. 자문 범위는 통상정책과 협상의 방향은 물론 특정 통상조약 체결의 타당성, 국내 보완대책까지 폭이 넓다. 민간 위원들이 관료들과 내밀한 정보를 교류하며 의견을 제시해 더 나은 협상 결과를 이끌어내라는 취지인 셈이다.

하지만 정작 통상관료들이 민간의 ‘쓴소리’를 귀담아들을 태세가 돼 있었는지는 회의적이다. 이날 회의는 위원 30명 중 21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찬을 겸하여 두시간 동안 열렸다. 인사말, 정부 안건 발표 등의 시간을 빼면 토론과 의견 수렴에 배정한 시간은 75분에 불과한데, 토론 메뉴는 엄청나게 방대한 사안들이다. 우리나라 수출입 비중에서 부동의 1위인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뿐 아니라 미-중 패권다툼이 맞물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세계무역기구(WTO) 협상까지 안건으로 올라왔다. 75분은 참석 위원 21명의 의견을 고루 듣는 데 배정한다면 1인당 3.6분가량이 돌아가는 짧은 시간이다. 아마 모든 위원이 참석했다면 1인당 2.5분밖에 안 돌아갔을 것이다. 민간 위원들이 저마다 쓴소리를 할 기회나 시간이 길지 않을 것임은 누가 봐도 자명하다.

그나마 압축적으로 의미있는 토론을 하려면 사전에 심도 깊은 정보를 제공하고 사전 협의를 거쳐 핵심 쟁점들을 미리 추리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산업부는 회의 일주일을 앞두고 자료를 보냈으나, 참석 위원들은 자료가 언론 보도자료 수준을 넘지 않는 수준이라고 평가하는 등 만족할 만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자문위 회의를 법적 요건을 채우는 구색 맞추기로 운영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세라 기자
자문위는 2012년 11월 출범했지만 지난 2년간 전체회의는 올해 두 차례를 포함해 지금껏 다섯 차례 열렸을 뿐이다. 지난해 콜롬비아에 이어 올해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중국, 뉴질랜드 등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줄줄이 타결한 점을 고려하면 이토록 드문드문 부실하게, 심지어 한-중 협정 같은 큰 협상이 타결된 뒤에야 열리는 자문회의가 협상 과정에서 의미있는 구실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는 자문위 분과회의도 활용한다고 얘기하지만 한 민간 위원은 “2년간 위원으로 참여했지만 내가 속한 분과회의는 딱 한 차례 열렸고 서면으로 의견 수렴 요청을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자문위 구성도 대한상공회의소 같은 재계 단체는 이름을 올렸지만, 시장개방의 피해가 큰 농수축산업계나 노동계 이해관계자 단체는 그나마 끼지도 못했다. 결국 자문위는 쓴소리를 할 사람도, 쓴소리를 할 기회도 드문 게 현실이다. 이러니 진짜 쓴소리들은 그저 차가운 거리시위로 내몰릴 뿐이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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