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소주 한잔 더 혀요. 마시는 것 보고 일어날라니께.” 지난 30일 낮 충남 청양군 비봉면의 한 식당. 자작나무 껍질처럼 머리칼이 하얀 어르신이 곁에서 거듭 권했다. 식당을 가득 채운 이들은 강정리 주민 40여명. 밭고랑 같은 주름의 칠순·팔순 노인들은 왁자지껄했다. 하지만 식당에서 400m 남짓 거리, 마을 복판 석면광산에는 지금도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장이 있다. 석면광산 자리에 폐기물을 부수는 컨베이어벨트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곳은 전국에서 여기뿐이다. 노인들은 요지경 같은 일이라고 하지만, 청양군은 2001년 허가를 내줬다. 석면은 1급 발암물질이다. 점심식사에 앞서 마을회관에서는 총회가 열렸다. 굽은 허리, 침침한 눈, 시린 무릎의 노인들이 어깨를 맞대고 앉았다. 수백장의 투쟁 사진이 회관 벽을 둘렀고, 주민들이 손수 짠 1인시위 순번표와 신문 자료 등이 빼곡했다. 이태연(65) 이장이 말하는 사이사이 그믐 같은 가래기침이 끓었다. 이상선 ‘석면광산·폐기물처리업체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가 인사말을 했다. “강정리 사안은 마을운동과 주민 권리의식 차원에서 이정표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이어 권혁호 ‘강정리 폐기물매립장 반대 주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이 2013년 8월부터 최근까지의 경과보고를 했다. “외로운 싸움이었습니다. 주민들의 힘겨운 노력이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매립장 허가가 취소되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자작나무 껍질 같은 손으로 노인들이 손뼉을 쳤다.
전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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