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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31 19:47 수정 : 2014.12.31 20:08

현장에서

“소주 한잔 더 혀요. 마시는 것 보고 일어날라니께.”

지난 30일 낮 충남 청양군 비봉면의 한 식당. 자작나무 껍질처럼 머리칼이 하얀 어르신이 곁에서 거듭 권했다. 식당을 가득 채운 이들은 강정리 주민 40여명. 밭고랑 같은 주름의 칠순·팔순 노인들은 왁자지껄했다. 하지만 식당에서 400m 남짓 거리, 마을 복판 석면광산에는 지금도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장이 있다. 석면광산 자리에 폐기물을 부수는 컨베이어벨트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곳은 전국에서 여기뿐이다. 노인들은 요지경 같은 일이라고 하지만, 청양군은 2001년 허가를 내줬다. 석면은 1급 발암물질이다.

점심식사에 앞서 마을회관에서는 총회가 열렸다. 굽은 허리, 침침한 눈, 시린 무릎의 노인들이 어깨를 맞대고 앉았다. 수백장의 투쟁 사진이 회관 벽을 둘렀고, 주민들이 손수 짠 1인시위 순번표와 신문 자료 등이 빼곡했다. 이태연(65) 이장이 말하는 사이사이 그믐 같은 가래기침이 끓었다. 이상선 ‘석면광산·폐기물처리업체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가 인사말을 했다. “강정리 사안은 마을운동과 주민 권리의식 차원에서 이정표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이어 권혁호 ‘강정리 폐기물매립장 반대 주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이 2013년 8월부터 최근까지의 경과보고를 했다. “외로운 싸움이었습니다. 주민들의 힘겨운 노력이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매립장 허가가 취소되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자작나무 껍질 같은 손으로 노인들이 손뼉을 쳤다.

전진식 기자
마을회관 구석에 시 한편이 인쇄된 종이가 수북했다. 지난달 14일 석면폐증 2급 진단을 받았던 이기태(79) 할아버지의 별세를 애도하는 시였다. 신경섭 시인(예산여고 교사)이 썼다. 그 시의 한 구절은 왜 노인들이 상복을 입고 거리에 나섰고 오늘도 군청 앞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1인시위를 하는지 잘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석면 가루만큼/ 세상은 아직도 검은 눈과 검은 손이 주고받는 검은 돈의 거래가 있어/ 마음 편히 공기를 내쉴 수 없는 땅”

안희정 충남지사는 새해 도정의 핵심으로 도민 행복을, 이석화 청양군수는 여민동락을 앞세웠다. 두달 전 사무소가 개설되자마자 주민들의 ‘1호 진정’을 받아든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가 이 마을의 고통에 책임이 있는 충남도·청양군에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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