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1.07 19:52
수정 : 2015.01.07 21:18
[현장에서]
현대차, 지배구조 개선·의사결정 투명성 확보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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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대통령이 8일 오전 워싱턴 헤이 아담스호텔에서 열린 수행경제인과의 조찬에서 정몽구회장에게 빵을 권하고 있다. 2013.5.8. 워싱턴/강창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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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관한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적극적인 투자로 한국 경제의 도약을 이끌어 달라”고 당부했다. 이 자리에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정 회장과 1분여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정 회장은 중국 충칭과 창저우시 공장 건설에 힘을 써 준 데 대해 감사 인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날 현대차그룹은 “국가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며 2018년까지 80조7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정치권 코드 맞추기’라는 분석이 나왔다. 투자 계획을 세우는 과정과 발표 배경 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전격적인 대규모 투자 계획 발표가 이뤄진 것을 두고 현대차그룹의 의사결정 구조를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평가도 돌았다. 1인 지배 체제에서의 의사결정 구조가 아니라면 박 대통령과 만난 지 하루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안에 발표까지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발표한 투자규모는 역대 최대 수준이다. 연평균 투자액이 한전 터 매입비용 등을 빼도 17조4250억원이다. 설비투자부터 연구·개발까지 내용도 광범위하다. 정 회장 결단 없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규모 투자가 제대로 성과를 내려면, 주주들의 동의는 물론이고 현대차와 기아차만 합쳐도 10만여명에 달하는 임직원들이 비전을 공유하고 계획을 이행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과 어떻게 소통했는지는 설명이 없다시피 했다. 이날 현대차그룹 분위기는 지난해 10조5500억원을 한전 터 입찰액으로 써 냈을 때와 비슷하게 ‘회장님의 통 큰 결단’ 을 강조하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
‘오너의 결단’을 바라보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선은 좀 다르다. 업계 설명을 들어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전 터 고가 입찰 논란 이후 그 과정에서 불거진 의사결정 구조의 불투명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황제 경영’으로 불리는 지배 구조를 투명하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침묵으로 답하는 사이 지난해 7월 24만원대였던 현대차 주가는 배당 확대 검토와 연비개선 로드맵 계획 발표에도 16만원대까지 하락했다. 투자계획을 발표한 6일에도 2% 넘게 떨어졌다. 대규모 투자 계획에 대해서는“생존을 위한 경쟁력 강화와 연비 및 환경 규제, 기업소득환류세 등에 따라 어차피 해야 할 투자”라는 냉소적인 일부 평가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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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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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혁연대는 최근 “현대차의 외국인 주주비율이 한전 터 매입 결정 뒤 45.6%에서 43.6%로 낮아졌다”며 “지배구조 위험에 대한 해결 의지가 없다면 현대차가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아차 인수와 미국 공장 건설 등 ‘오너의 뚝심’이 성공으로 이어진 전례가 있지만 지배구조 개선과 의사결정 투명성 확보라는 과제를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다는 뜻이다. “장기적인 기업 지배 구조 변화 등에 대한 비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에 귀를 열어야 할 시점이다.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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