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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26 19:55 수정 : 2015.02.26 21:38

현장에서

박병원(63) 회장이 26일 제6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경총은 노사문제를 전담하는 전국 조직으로 사용자 대표단체다. 양대 노총과 ‘힘겨루기’를 하는 자리다보니 그동안 회장이 단임(임기 2년)으로 물러난 적이 없다. 지난해 12월께 회장직을 제안받은 박 회장은 고심 끝에 지난 12일 수락했다. 그는 이날 취임사에서 “‘너는 쉽고 좋은 자리만 하겠다는 말이냐’는 질책성 고언을 외면할 수 없었다. 노사관계를 다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어 오래 망설였다”고 했다.

그런 박 회장에게 다음달 ‘포스코 사외이사’란 직함이 하나 더 생긴다. 포스코는 지난 16일 이사회에서 그를 새 사외이사 후보로 결정했고, 다음달 13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처리된다. 취임사에서 “감당할지 걱정이 된다”는 경총 회장에 비하면 그에겐 상대적으로 ‘쉽고 좋은’ 자리일 수도 있다. 경총 회장은 비상근 무보수인 데 반해, 포스코 사외이사는 몇차례 이사회에 참석하고 1년에 7300만원 정도 받는다. 박 회장은 이날 <한겨레> 기자와 만나 “경제5단체장 중에서 무역협회장만 유일하게 상근하는 자리다. 나는 상근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포스코 사외이사를 맡는 게 맞다”고 말했다.

경제단체장 ‘감투’를 쓰고 특정 기업의 사외이사를 겸직하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전임 이희범(66) 경총 회장이 대한항공 사외이사를 겸직한 사례가 있다지만, 모양새가 어색하다. 권오준(65) 포스코 회장은 경총 회장단에 소속돼 부회장 직함을 갖고 있다. 박 회장과 권 회장은 경총에선 회장단 소속으로 얼굴을 맞대는 관계다. 박 회장이 포스코의 사외이사로 그때그때 ‘변신’해, 경영진인 권 회장의 의사결정을 견제·감시하는 사외이사의 독립된 지위를 가질지 의문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김정필 기자
박 회장의 행보는 이날 나란히 취임한 김인호(73) 한국무역협회장 처신과는 다르다. 김 회장은 케이티앤지(KT&G) 이사회에서 사외이사 후보로 결의된 뒤 무역협회장에 내정됐다. 케이티앤지는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회사다. 정부 영향력이 여전한 곳인데, 관료 출신의 친정부 인사가 사외이사로 선임되면 독립성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러자 김 회장은 지난 25일 일신상의 사유를 들어 사외이사 후보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박 회장이 사외이사를 맡게 될 포스코도 공기업에서 출발해 지금은 민영화됐지만, 아직도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 포스코는 지난해 말부터 새 사외이사 후보 추천 작업을 했다고 한다. 당사자 의견을 구하는 절차를 고려하면, 박 회장은 포스코 사외이사 제안을 받은 상황에서 경총 회장직 수락을 요청받은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과 포스코 모두 시간상 ‘포기’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행사하지 않았던 것이다. 박 회장 영입과정을 잘 아는 포스코 관계자는 “박 회장이 경총 회장과 포스코 사외이사 두 자리를 손에 쥔 채 고민했던 걸로 안다. 박 회장은 누군가 딴죽 걸지 않는지 한달 이상 지켜보다 별 움직임이 없자 둘 다 하는 쪽으로 결정한 듯하다”고 말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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