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4.21 14:05 수정 : 2016.04.21 21:22

일본 지진 구호물품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일본 구마모토 지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기부한 기내 담요 1000장 등 구호물품을 1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후쿠오카행 여객기에 싣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구호 성금 1억원도 일본에 전달했다. 인천공항/연합뉴스

현장에서

외교부는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에콰도르에 70만달러(8억원)를 지원한다고 20일 발표했다. 에콰도르는 16·17일 연쇄 지진으로 400명이 목숨을 잃는 등 45만명의 난민이 발생해 피해 복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노르웨이가 각 180만유로(23억원)를 이미 지원했고, 멕시코·스페인·쿠바 등이 긴급구호대를 파견했다.

일본도 14·16일 두차례의 강진으로 규슈 구마모토현을 중심으로 수십명이 목숨을 잃고, 20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그런데 정부는 일본엔 돈·물품·인력 지원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정부는 왜 먼 에콰도르는 지원하고 가까운 이웃인 일본은 지원하지 않는 걸까?

일본 지진 피해와 관련해 한국사회엔 극단적으로 다른 두 견해가 엇갈린다. 한쪽은 ‘박근혜 정부가 4·13 총선 참패로 정신줄을 놓아 일본 구호를 잊은 거 아니냐’는 힐난이다. 다른 한쪽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성심껏 도와줬더니 돌아온 건 역사 왜곡, 전시 성노예제(일본군위안부) 국가범죄 부인뿐이다. 이번엔 절대로 도와주면 안 된다’는 감정적 반발이다. 두 의견 사이엔 조정과 화해의 여지가 거의 없다.

정부가 두 극단적 견해 사이에서 좌고우면하느라 일본에 구호 지원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사실 정부는 이미 여러 차례 일본 정부에 구호 의사를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18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한테 ‘위로전’을 보냈다. 숱한 인명과 재산 피해에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하고, “사태 수습을 위한 지원 의사”를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21일 “구호 의사를 거듭 밝혔지만, 일본 쪽에서 ‘마음은 고맙게 받겠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수습할 수 있다’며 정중한 사양 의사를 밝혀왔다”고 말했다. 일본이 거절했다는 얘기인데, 한-일 관계가 나빠서는 아니다.

이른바 선진국들은 대형 재난을 당해도 다른 나라의 지원을 사양하는 경향이 있다. 재난 대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재원도 부족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더구나 “지진은 우리의 일상”이라 여기는 일본은 ‘지진 대비에 관한 한 우리가 가장 앞선다’는 자부심도 강하다. 실제 구마모토현 지진 피해 복구에 공식 참여한 ‘외국’은, 주일미군이 수직이착륙기인 오스프리로 인명 구조를 돕는 정도다.

사정이 이러니 한국 정부가 일본에 구호금품이나 인력을 보내지 않는 걸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다. 한국 시민사회의 구호 모금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다. 위안부 피해 당사자인 김복동·길원옥 할머니가 “조금씩이라도 힘을 모으자”며 130만원을 기부하고, 아시아나항공이 담요 1천장을 피해 지역에 긴급 지원한 게 알려진 전부다.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때 한국이 가장 먼저 긴급구호대를 파견하고,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며 90억엔(937억원) 남짓을 모금·전달한 선례와 사뭇 다르다.

근본적으론 이번엔 동일본대지진 때와 달리 일본 자체로 수습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반응으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의 뜻을 밝힌 ‘고노담화’(1993년 8월4일)를 사실상 부인하며 역사 역주행을 자행하고 있는 아베 정권과 12·28 합의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광범한 반감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하기 어렵다. 아쉽고 안타깝다.

박근혜 정부는 상반기 중에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는 등 12·28 합의 이행을 강행할 태세다. 그리 되면 4·13 총선에서 ‘무효화·재협상’을 공약으로 제시한 야당은 물론 12·28 합의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낸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국 사회가 들썩일 터고, 한-일 관계도 격랑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이제훈 기자
한국 사회엔 결혼 등 경사는 걸러도 초상 등 애사는 반드시 챙기라는 말이 있다.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준다는 인지상정이다. “우리는 일본 사람과 싸우는 게 아니다”라는 김복동·길원옥 할머니의 가르침을 따라, 한국 시민사회가 지진으로 깊은 상심에 빠진 일본 시민을 향해 연대의 손길을 내밀면 좋겠다. 한·일 정부의 주장과 달리 12·28 합의 따위로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가 열릴 리 만무하다. 한·일 시민사회의 ‘마음의 연대’ 없이 어떻게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가 가능하겠나.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현장에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