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9일(현지시각) 오전 11시5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안전보장이사회 앞 약식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기자회견 도중 한국 대선 출마 관련 질문이 나오자 준비된 듯한 답변을 읽었다. 반 총장은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분명히 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유엔 회원국들이 부여한 사무총장으로서의 임무 이외에는 관심을 분산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무총장으로서 임기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모든 노력과 시간을 쏟아붓겠다”며 “이것이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답이자 나의 확고한 신념”이라고 말했다. 반 총장의 이날 회견은 한국 방문 과정에서 보인 대권 행보 논란에 대해 ‘나는 아니라고 했다’는 식의 일종의 기록을 남기기 위한 제스츄어로 비춰진다. 회견장에 참석한 한 외신기자는 “반 총장이 양다리를 걸치려고 하는 것 같다.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다른 유엔 출입기자도 “유엔 기자들 사이에선 반 총장이 한국 대선에 출마하는 것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직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있으면서 출신국가의 대선 출마를 선언할 수는 없다. 사무총장 본연의 임무를 저버리고 임기 이후 정치적 행보에만 관심이 있다거나, 유엔 사무총장직을 개인의 정치적 발판으로 삼는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이 쏟아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남은 임기동안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기도 쉽지 않다. 반 총장에 대한 국제적 반대세력의 비판은 반 총장 개인뿐 아니라, 출신국가인 한국의 외교적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그가 진정으로 논란을 잠재우기 원한다면 ‘불출마 선언’을 하는 것인데, 그는 이 부분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 것이고, 반 총장의 메시지는 ‘기회만 되면 출마하겠다’는 것으로 읽힐 수 밖에 없다.
뉴욕/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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