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8.18 21:02
수정 : 2016.08.18 21:37
현장에서
17일 고용부 가이드북 발표
“근로자와 충분히 협의하라” 강조
모범사례 엘지이노텍 2년 협의
정작 정부는 5개월만에 밀어붙여
지난 17일 고용노동부가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가이드북’을 발표했다. “호봉제 등 연공 중심의 임금체계가 일자리 부족, 고용불안, 격차 확대를 야기하기 때문에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개편이 필요하다”는 발표 배경과 절차, 관련 법리 등이 담겨 있다.
이 가이드북은 “명확한 비전 제시와 함께 세부 개편 내용에 대해서도 근로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협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정작 정부는 120개 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서 이런 과정을 지키지 않았다. 가이드북에서 모범사례로 든 엘지(LG)이노텍은 2년 동안 노사가 협의해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를 도입했다고 설명돼 있다. 정부는 지난 1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지침을 처음 발표한 이후 불과 5개월 만인 6월 초에 도입 완료를 선언했다.
“성과 평가기준이 모호하고, 성과주의는 공공기관의 공공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노조는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노조를 설득하려는 노력은 세금이 1000억원 넘게 들어가는 조기 도입 인센티브 지급을 제외하고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특히 고용부는 4월 중순에야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 지원사업’ 용역을 발주했다. 올해 12월말에 끝나는 이 용역 내용에는 ‘공공기관 임금체계 표준모델안’도 포함돼 있다. 노동자들과 협의할 ‘임금체계 표준모델’도 없이 도입만 서두른 셈이다.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에서 가이드북 내용대로 된 부분은 고용부 스스로가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것”이라고 밝힌 ‘취업규칙 변경의 사회통념상 합리성’ 부분이다. 가이드북에는 “근로자들이나 노조가 무조건적인 반대만 하는 경우에는 과반수 노동조합(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더라도 취업규칙 변경에 대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될 수 있으며 변경의 효력이 인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공공기관 노조들이 “노조의 동의 없는 취업규칙 변경은 불법”이라고 주장하자, 지난 5월 이기권 고용부 장관이 나서 “노조가 협의를 피하고 동의권을 남용하고 있어 취업규칙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적용할 수 있다”고 반박한 바 있다. 이후 공공기관 노조는 기관장들을 고발해 법적 다툼을 시작했고 총파업을 결의했다. 정부가 노사 협의와 소통 없이 진행한 임금체계 개편이 불러올 갈등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166쪽짜리 가이드북엔 ‘언젠간 나도 저 상사처럼 많은 임금을 받게 될 거야’라는 희망을 품고, 초년 시절의 낮은 임금과 과중한 업무를 감수해왔던 현재의 중년 노동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는 찾을 수 없다.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면 기업들에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도 피해나갈 방법을 알려주거나, “임금 많이 받는 당신들 때문에 청년들을 채용하지 못한다”는 논리로 중년 노동자들에게 청년실업·고용불안·임금격차 책임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왜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한지 노동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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