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0.07 11:38
수정 : 2016.10.07 21:10
와사비·한국인 비하 버스표 등 일본의 뿌리 깊은 혐한과
일본 정치인의 망언에 반응하는 한국의 반일은 달라
더 우려스러운 건 제2한국학교 재검토 등 공적 혐한 정책
3년 전 일본에 부임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지인의 소개로 일본의 한 지방지에서 근무하는 일본인 기자와 저녁을 함께하게 됐다. 일본에 부임한 2013년 9월이면 일본 내의 혐한 열풍이 정점을 달하던 때였다. 도쿄의 ‘한류거리’인 신오쿠보에선 매일 같이 “총(한국인을 비하해 부르는 말)들은 일본에서 떠나라”는 재특회(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의 혐한 집회가 이어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일본의 혐한’과 ‘한국의 반일’이 술자리 주제로 오르게 됐다. 당시 그는 “지금 보이는 ‘혐한 집회’는 잎사귀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인들에겐 뼛속 깊이 한국·조선에 대한 차별의식이 있다”는 말을 했다. 일본에 도착한 지 채 한 달도 안 된 내게 그가 던진 그 말은 마음 속의 상처가 됐고, 그래서 되도록 이 같은 사실을 의식하지 않고 살기 위해 노력해왔다.
최근 일본 내 혐한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동포 페친들의 페이스북을 통해 잇따라 불쾌한 소식을 접하게 됐다. 하나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은 일본 오사카의 ‘시장스시’(市場ずし) 난바점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일본어를 못하는 낌새가 보이면 직원들끼리 '총'이라고 비웃으면서 음식을 만든다. 와사비를 많이 넣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매워서 눈물 흘리는 손님을 보며 자기들끼리 '저 표정 봤냐?' 하면서 비웃는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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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YTN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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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하루하루 숨 쉬는 순간순간이 괴로움의 연속인데 급속한 피로감이 느껴져 이를 기사로 다루지 않았다. 다시 며칠 뒤엔 간사이 지역의 대형 버스회사인 ‘한큐버스’의 직원이 4월19일 오사카 우메다에서 효고현 아리마온천을 향하는 한국인의 버스표에 ‘김총’이라는 이름을 적어 넣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김총을 일본어로 바꾼다면 아마 ‘스즈키 쪽바리’ 정도가 될 것이다. 버스 회사 쪽에선 6일 일본 언론의 취재에 “들리는 대로 입력한 것으로, 악의는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그 말을 누가 믿을 것인가.
한일관계가 악화된 지난 2012년부터 일본에선 엄청난 혐한 열풍이 불었다. 당시 일본 서점에 가면 <매한론(어리석은 한국론)> <한국인에 의한 치한론(부끄러운 한국론)> 등 혐한론이 서가를 점령하고 있었다. 한국을 멸시하고, 조롱하며, 결국은 한국은 3류 국가로 추락해 망하고 말 것이라고 저주하는 내용이다. 매일 쏟아지는 혐한 뉴스에 마음이 멍들에 이러다간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엔 ‘반일’이 있지 않겠느냐 반론하겠지만, 한국의 반일엔 일본의 혐한과 같은 다른 민족에 대한 차별·멸시·저주의 느낌은 없다. 한국인들 대부분이 일본인의 성실함, 근면함을 존경하며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쏟아내는 일본 기초과학의 저변과 저력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본다. 반일 정서가 분출하는 것은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식민지배와 침략의 역사에 대해 올바로 사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을 줄 때 정도다. 지난 역사적 경위를 살펴 보더라도 한국은 일본을 침략해 식민지배한 적이 없고, 언어와 문화를 빼앗으려 한 적이 없으며. 수도권에 대지진이 발생했다고 수상해 보이는 이에게 ‘15엔 50전’을 발음해 보라고 한 뒤 응답하지 못한 이들을 학살한 적도 없다.
한국인들이 일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지난 3~4년 동안의 엄청난 관계 악화에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의 수는 2012년 204만명, 2013년 245만명, 2014년 275만명, 2015년 400만명으로 가파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올들어선 8월까지 벌써 328만명이 일본을 찾았다. 이 추세라면 올해 일본을 찾는 한국 관광객 수가 500만명을 넘길지도 모르겠다. 이에 견줘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 관광객은 2012년 351만명, 2013년 274만명, 2014 228만만명, 2015년 183만명으로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문제는 이 같은 현실에 대처에 관리해 나가는 일본 정부의 자세다. 최근 일본에서 ‘헤이트 스피치 방지법’ 등이 시행돼 눈에 띄는 혐한 집회는 줄어든 게 사실이다. 상식적인 일본인들이라면 당연히 와사비와 총 사건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고민할 것이라 본다.
그런 한편 일본 정부는 국가가 직접 나서 고교 무상화 적용 대상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하는 등 노골적인 민족 차별 정책을 시행하는 중이다. 이는 대북 제재의 일환이라고? 한국이라고 다를 것도 없다. 우익인 고이케 유리코 새 도쿄도 지사는 전임 마스조에 요이치 지사가 사실상 결정한 제2 한국학교 부지 대여안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3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사죄 편지’를 보내달라는 한국의 요구에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발언했다. 미국이 같은 요구를 했어도 그런 표현을 사용할 수 있었을까. 아베 총리가 직접 시연해 보여준 한국에 대한 뿌리 깊은 멸시의 정서를 생각해 보면, 그 나라 국민들이 한국인들이 먹는 스시에 와사비를 더하거나 티켓에 “총”이라는 표현을 적는다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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