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0.13 16:41
수정 : 2016.10.13 21:24
재정 정책은 세금을 걷고 쓰는 일을 모두 아우른다. 걷는 일과 쓰는 일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뻔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알 만한 사람들이 이를 모르는 척하는 것 같아서다. 지난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정감사를 앞두고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자해 발언’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문제의 발언은 야당이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공세를 펴는 데 대한 방어 차원에서 나왔다. 그의 말을 옮기면 이렇다. “법인세율 인상은 국제 경제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한국만 역주행할 수 없다. 기업을 해외로 내모는 ‘자해 행위’이다.”
법인세율 인상이 정말 한국 경제에 자해 행위가 될지는 논란의 대상이나 정 대표가 이 주장의 근거로 든 국제 경제 흐름이나 주요 선진국이 법인세를 인하하고 있다는 언급은 사실에 가깝다. 최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가별 조세 정책 동향 보고서에는 꾸준히 떨어지던 법인세율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14년까지 하락 추세가 멈췄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상당수 국가가 세율 인하 쪽으로 제도를 바꿔가고 있다는 내용이 실렸다.
하지만 국제 흐름은 법인세율 인하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다른 측면에선 현 정부가 펴는 재정 정책이나 여당의 주장은 국제 흐름과 무관하거나 동떨어져 있다. 먼저 재정 정책의 한 축인 세금 제도에서 주식 양도소득 과세나 소득세 누진도 강화 등을 통한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증세는 2008년 위기 이후 굳어진 국제 흐름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선 아예 금융위기와 위기 뒤 장기 저성장 원인 중 하나로 심각한 소득 불평등을 꼽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 세제 운용을 권고한다.
재정 정책의 또다른 축인 세출 정책은 더더욱 국제 흐름과 거리가 멀다. 소득 재분배와 경기 진작을 위해 과감한 확장적 재정 운용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국제 사회에 높다. 매년 열리는 ‘주요 20개국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G20 경제회의)나 국제금융통화위원회(IMFC) 공동선언문에는 재정 정책을 강조한 권고가 빠지지 않는다. 이에 반해 한국 정부는 그간 과감함과는 거리가 먼 ‘무늬만 확장 재정 정책’만 반복하고 있다.
심지어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한 기자간담회에서 “재정은 쓸 만큼 썼다. (이제는) 재정 적자를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크리스틴 라가드르 아이엠에프 총재가 줄곧 한국을 콕 짚어 재정 확대를 요구하는 데 대해서도 ‘항상 하는 이야기’ 쯤으로 유 부총리는 치부했다. 정 원내대표 표현을 빌리면, 정부는 국제 흐름에 역주행하고 한국 경제를 자해하는 재정 정책을 펴고 있는 셈이다.
정책은 국제 흐름과 국내 특수성을 모두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정 대표가 법인세율 인상 반대 논리를 국제 흐름에서만 찾는다면, 옹색해지는 건 그간 국제 흐름과 동떨어진 재정 정책을 편 박근혜 정부가 된다. 당장 올해 예산(추가경정예산 기준)보다 단지 0.5%만 지출을 늘린 ‘2017년 본예산안’을 짠 정부부터 정 대표가 다그치는 게 어떨까.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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