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05 15:05
수정 : 2017.07.05 23:37
미세먼지 감축효과 계산에 건강위해도 고려 안해
공사장 날림 먼지와 1급발암 먼지 동등하게 계산
환경피해 저감효과 알려진 규모보다 훨씬 클수도
미세먼지 대책으로 환경부가 제시했던 에너지 상대가격 조정안이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다. 사업을 조정해야 하는 변화가 싫은 산업계가 담배세 인상까지 연결지으며 이른바 ‘꼼수 증세론’을 확산시키자, 기획재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조정안에 대한 공청회도 열리기 전에 “경유값 인상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기재부는 4일 ‘수송용 에너지 상대가격 합리적 조정방안 검토에 관한 공청회’가 열린 뒤 “경유값 인상을 추진할 근거가 없다”고 거듭 확인했다.
산업계와 기재부는 “미세먼지를 줄이는데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것을 에너지 가격 조정에 반대하는 이유로 내세운다.조세재정연구원을 비롯한 4개 국책연구기관이 현재 휘발유값의 85% 수준인 경유값을 최소 90%에서 최대 121% 수준까지 올리는 10가지 시나리오를 따져봤지만, 국내 초미세먼지(PM2.5) 배출량이 0.1~2.8% 줄어들 뿐이라는 것이다. 미세먼지 배출량 감소폭만 보면 실효성이 높지 않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배출량이 얼마나 줄어드느냐가 아니라 호흡기 질환 악화나 조기 사망과 같은 건강피해가 얼마나 줄어드느냐다.
4일 공청회에서 발표된 4개 국책연구기관 검토 보고서를 보면, 에너지 상대가격을 조정할 때의 건강영향을 포함한 환경피해비용 감소폭은 2014년 기준으로 최소 0.55%, 최대 18.47%이다. 단순 미세먼지 배출량 감소폭보다 5~7배 가량 크다. 경유세를 올리는 대신 휘발유세를 내려 정부가 걷는 세금을 늘리지 않는 세수중립방식의 상대가격 조정만으로도 환경피해비용을 3.4%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미세먼지로 조기 사망하는 사람 100명 가운데 3.4명 꼴로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세먼지 배출량 감소폭보다 높게 제시된 이 환경피해비용 감소폭도 과소평가된 것일 수 있다. 보고서의 환경피해비용 계산에 대기오염물질이 서로 반응해 만들어지는 2차 미세먼지까지만 고려되고 배출원별 위해도 차이가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배출원을 지닌 미세먼지 저감 대책에서는 배출량과 농도 뿐 아니라 질도 중요하다. 같은 양의 미세먼지를 줄이더라도 멀리 떨어진 공장이나 공사장의 날림먼지에서 줄이는 것과 사람들 코 앞으로 지나가는 경유차가 내뿜는 1군 발암성 먼지에서 줄이는 것은 건강피해 저감효과 측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대기 위해성 평가(MATES) 보고서를 보면, 경유엔진 배출가스는 대기 중 초미세먼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에 불과한 상태에서 대기 위해성의 84%를 점유할 정도로 유독성이 절대적이다. 이번에 발표된 국책연구기관 검토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한 전문가도 “도로이동오염원과 같은 경우는 독성이 강한 특성이 있고, 노출되는 인구가 다른 오염원에 비해 상당히 많다는 점 때문에 보고서에 제시된 결과보다는 좀더 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경유값을 올릴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로 국민적 동의가 없다는 점을 든다. 미세먼지만이 아니라 기후변화와 핵물질로부터 더 안전한 나라로 가기 위해서도 에너지값을 올릴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경유값 인상안이 언론에 보도된 뒤 기재부에 쏟아졌다는 항의 전화가 여론의 전부가 아닐 수 있고, 그런 여론조차 고정돼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재부는 물론 에너지 상대가격 조정방안을 꺼낸 환경부에서도 국민을 설득해 동의를 이끌어내는 작업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일처럼 간주하는 듯하다. 에너지 상대가격 조정방안 공청회와 보고서 발표가 고농도 미세먼지가 잦은 두 세달 전에 이뤄졌다면 분위기는 또 달랐을지 모른다. 1년 중 미세먼지가 가장 적은 한여름 장마철을 보고서 발표 시점으로 잡은 것부터가 국민의 동의가 절실하지 않았다는 방증이 아닐까.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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