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03 19:47
수정 : 2017.08.0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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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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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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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말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을 찾았다. 그동안 얼굴도 보기 힘들던 최고경영진들이 그 자리에 모두 앉아있었다. 피고인 이재용, 박상진, 최지성, 장충기, 황성수. 사건명은 뇌물공여 등. 하루종일 피고인석에 앉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뒤에 앉은 옛 미래전락실의 최지성 실장과 장충기 사장과 눈 한번 마주치지 않은 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인 2일 법정 분위기는 달랐다.
“회의를 주재해도 이재용은 구석에 앉았습니까?”(변호인)
“(이건희) 회장님이 계실 때는 일종의 옵저버 비슷하게 맨 가에 앉았고, 제가 관계사랑 회의를 할 때는 제 옆에 앉아서 제가 회의진행하는 것을 보곤 했습니다.”(최지성)
“최지성 실장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큰 신임을 받았죠?“(변호인)
“네.”(이재용)
“이건희 회장 와병 중에 대리인이라고 하는 최지성 실장의 영향력이 삼성 내에서 가장 큽니까?”(변호인)
“네.”(이재용)
최지성 전 실장은 자신이 삼성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라며 이재용 부회장을 감쌌다. 그룹 계열사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도 전문경영인이 결정했다고 하고, 정유라씨 승마지원도 이 부회장은 몰랐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미략전략실 해체와 전경련 탈퇴 결정도 “국회 청문회 휴정 중에 (최지성 실장과) 통화를 해서 코치를 주셔서 그렇게 발언하게 됐다”고 말했다. 알지도 못하고 지시도 안 했으면 책임질 일도 없다고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한 것일까. 변호인의 전략도 이해는 된다. 이 부회장이 구치소에서 나오려면 아무것도 몰라야 뇌물 혐의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는 입장에선 어리둥절하다. 최 전 실장은 이 부회장에 대해 “평소에 곱게 자라서” “자본시장법 잘 모를 것” “공부도 시키고” 등 일반인들의 예상과 다른 내용을 밝혔다. 그렇다면 보수언론이 ‘오너의 경영판단과 과감한 투자 결정’이 필요한데 이 부회장이 옥중에 있다며 호들갑 떨 필요도 없다.
당장은 이런 전략이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이 부회장이 삼성을 이끄는 위치에 오른다면 누구나 떠올릴 것이다. ‘그는 무엇을 아는가?’
‘이건희 신화’의 상당 부분은 이건희 회장이 미래를 위해 내린 결단의 성과라는 것이었다. 슈퍼 순익을 만드는 반도체에 투자한 것이나 글로벌기업으로 그룹 체질을 바꾼 신경영선언 등이 이 회장에게 20여만명의 삼성 임직원을 이끌 ‘리더십’을 부여했다. 반면 이재용 부회장은 아직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참고인으로 출석해 단기적으로는 이 부회장에게 고통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축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삼성그룹 경영의 최정점에서 이 부회장을 구치소로 보내는 데 한몫한 이들이 진행 중인 ‘이재용 구하기’가 ‘축복’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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