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
[현장에서]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이 주는 ‘헛헛함’ |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 중인 100곳이 넘는 기업 가운데 유독 기아자동차 소송이 주목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1심 판결이라 판례가 변경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회사 소송과 쟁점도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아차가 주목받았던 것은 기아차가 한국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청구금액이 이자포함 1조원대에 이른데다 ‘강성노조’라 불리는 노동조합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영계와 보수언론은 이 세가지를 조합해 “귀족노조가 ‘로또’를 바라며 소송을 내 산업계에 악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다”고 기아차 노조를 공격했다. 그러나 지난 31일 서울중앙지법 재판부가 밝혔듯 이 소송의 본질은 “노동자들의 연장·야간·휴일근로로 이익을 향유한” 회사를 상대로 “근로기준법에 따라 마땅히 받았어야 할 임금을 지급해달라”고 한 것이다. 기아차 노동자들이 소송을 냈다고 비난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런데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한 판결을 두고 ‘헛헛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기아차 노조가 그동안 보여왔던 모습 때문일 것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지부인 기아차 노조는 현대·기아차를 판매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만든 노조인 ‘전국자동차판매연대노조’의 금속노조 가입을 반대했다. 또 ‘1사1노조’ 원칙에 따라 같은 노조 울타리 안에 있던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총투표를 통해 노조 밖으로 내몰았다.
기아차 노조는 선고 뒤 낸 입장문에서 회사 쪽에 “법원 판결 결과에 따라 통상임금 해결 방안을 즉각 제시하고, 불법파견 비정규직 문제, 일감 몰아주기, 원·하청 불공정 거래, 협력업체 노사관계 지배 개입 등 문제를 해결하는 재벌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자신들과 같은 일터에서 일하는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 불공정 거래로 자신들보다 훨씬 낮은 노동조건에 놓인 채 ‘노조할 권리’조차 침해당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과 연대하겠다는 다짐은 빠져 있다. 금속노조가 현대·기아차그룹을 상대로 공동교섭을 요구하며, 정상화한 통상임금 일부를 출연해 마련하겠다고 했던 일자리연대기금은 언급하지도 않았다. 이에 대해 1일 기아차 노조 관계자는 “회사가 항소 입장을 밝힌데다, ‘수조원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보수언론의 공격 속에서 노조가 얼마를 내놓겠다는 말을 한다 하더라도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크진 않을 것이라 판단해 언급하지 않았다”면서도 “일자리연대기금 제안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기아차 노조의 통상임금 소송이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오는 소송임은 분명하다. 다만 한편에선 이 소송이 소송 비용을 감당할 수 없고, 소송을 내는 것만으로도 고용 불안을 우려해야 하는 중소·영세업체 노동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긴다는 지적 또한 높다. 이런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고, 이번 소송이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하려면 기아차 노조가 앞으로 보여줄 모습이 더욱 중요하다. 기아차 노조가 자신들만의 ‘근로조건 유지와 향상’만을 꾀할 것이 아니라 더 열악한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과의 ‘실천적 연대’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