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15 20:55
수정 : 2019.04.15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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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에서 연설하기 위해 회의장에 들어가는 모습을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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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김정은 시정연설 ‘오지랖 넓은 중재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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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에서 연설하기 위해 회의장에 들어가는 모습을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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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당국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여야 한다. 우리의 입장과 의지에 공감하고 보조를 맞추어야 하며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적 행동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한 쓴소리다. 새겨들을 내용과 부적절한 대목이 섞여 있다.
오해부터 풀자.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이 당사자가 아니라고 말한 적이 없다. “지금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세계사적 대전환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한 당사자”(2월11일 수석·보좌관 회의)라는 표현을 보라.
문 대통령이 북-미 사이에서 ‘촉진자’를 자임한 건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한반도정책을 처음으로 정리해 밝힌 독일 쾨르버재단 연설(2017년 7월6일)에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항구적 평화정착”을 목표로 제시했다. ‘한반도 비핵화’는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 북미·북일 적대관계 해소 없이는 이룰 수 없다. ‘북핵’은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2월 평창올림픽 이후 한반도 정세의 변화를 ‘비핵화 과정’이 아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 일컫는 까닭이다.
‘북핵 문제’는 북-미 적대관계와 샴쌍둥이다. “신뢰구축”을 동력으로 한 북-미의 상호 변화가 없이는 해소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오지랖 넓게 촉진자 행세”를 해온 까닭이다. 당사자이자 촉진자로서의 행보다. 문제될 게 없다. ‘오지랖’이라는 비외교적 용어를 시정연설에서 쓴 김 위원장의 언어 감각이 문제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중재자’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지 아주 오래됐다. ‘중재’란 이해관계로 얽히지 않은 제3자의 몫이어서다. 한국은 ‘제3자’가 아니다.
문제는 인식의 오류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 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다. 남북관계 발전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동력이다”(2018년 광복절 경축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선 비핵화’ 주장에 명확히 선을 긋고 ‘남북관계·비핵화 병행 전략’을 구사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3대 경협(개성공단·금강산관광·철도도로연결) 사업은 진전이 없고, 정부 고위 인사들은 “제재 틀 안에서”를 입에 달고 산다. 지지부진한 남북관계가 진짜 문제다.
남북·한미·북미라는 3개의 양자관계 중 하나만 삐걱거려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전진하지 못한다. 따라서 “말로써가 아닌 실천적 행동”이라는 김 위원장의 호소가 아니라도,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영역을 넓히려 ‘대미 자율성’을 강화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렇더라도 “우리(북)의 입장에 보조를 맞추어야”라는 김 위원장의 주문은 부적절하다. 남·북·미 3자는 서로 다른 자기 정체성을 기반으로 ‘상대적 힘의 계산’과 ‘이익 저울질’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다. 차이를 줄이고 공동 이익의 기반을 넓히려는 노력은 3자 모두의 몫이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바늘구멍보다 좁은 출로를 찾아 한반도 평화의 너른 광장에 이를 수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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