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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10 18:01 수정 : 2019.09.11 14:15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시행한 지 2년이 넘어간다. 근로장려금(EITC)이 확대됐고, 최저임금이 인상됐다. 기초연금이 올랐고, 아동수당이 도입됐다. 내년부터는 한국형 실업부조도 도입된다고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까다로운 부양의무자 기준도 상당 부분 개선될 예정이다. 이런 정책들은 즉각 효과를 보이는 것도 있지만, 대체로 2~3년의 시차를 두고 우리 생활에 영향을 주게 된다.

정부의 정책은 그럴듯한 사업목적을 내세우게 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대체로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주고, 그를 통해 소비의 증가, 다시 생산과 고용의 증가를 정책 목표로 삼고 있다. 따라서 정책 시행 이후에는 평가를 통해 그 목적이 제대로 달성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 정책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도 줄일 수 있다.

우리 정부의 정책평가 체계는 최소한 외형적으로는 잘 갖춰져 있다. 먼저 사업 시행 전에 예산 투입 규모가 큰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한다. 어떤 것들은 핵심사업평가를 받고, 중요한 정책들은 따로 심층평가를 받게 돼 있다. 이런 평가 체계는 재정사업뿐만 아니라 조세정책과 고용정책에도 확립돼 있다.

하지만 이런 평가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평가의 기본이 되는 자료의 부족 때문이다. 정부 부처, 공공기관 등에서 수많은 자료를 생산하고는 있지만 제대로 공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정부 내에서 정책 평가를 위한 협조도 잘 되지 않고 있다. 담당자로서는 자료 협조를 하고 나서 나쁜 평가를 받는 것보다는 자료 협조를 하지 않고 평가를 받지 않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자료는 평가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된다. 기반이 조성돼 있지 않다면 제대로 된 평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나마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 건 국책연구기관들이 구축해놓은 패널조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패널조사는 동일한 개인 혹은 가구를 장기간 추적 조사한 것이다. 동일한 사람들을 조사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횡단면 조사보다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든다. 하지만 일단 구축해 놓으면 다양한 형태의 중장기 정책평가가 가능해진다. 패널 구축에 필요한 예산은 늘 부족하다. 부처의 측면에서 보면 패널자료를 구축해서 당장 재미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시행한 가장 대표적인 정책 중 하나는 근로장려금 확대다. 근로장려금은 이른바 노동의욕을 고취할 수 있는 제도로 알려져 있어 복지정책 중 비교적 친시장적인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올 들어 지원 규모가 1조원대에서 4조원대로 확대됐다. 그 절반인 2조원은 이번 추석을 즈음해 풀린다. 나머지 2조원은 하반기에 지급될 예정이다. 향후 그 규모가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는 이 막대한 규모의 근로장려금을 체계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패널이 없다. 사실 있긴 하지만 표본수가 충분치 않아 신뢰성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가장 대표적인 패널인 한국노동패널의 경우 2016년 통합표본 기준 근로장려금을 받은 가구가 100가구가 채 되지 않는다. 조세정보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조세재정패널의 경우에도 2017년 기준 70여가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표본수에 기초해 매년 4조원 정도의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국민의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혹자는 국세청 자료가 있지 않으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국세청 자료가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책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다른 정보가 국세청 자료에는 없기 때문에 평가에 활용하는 것이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근로장려금 확대로 인해 근로시간이 늘었는지, 더 나아가 소비가 확대됐는지 등을 국세청 자료로는 확인할 수 없다.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빅데이터는 임의추출 과정을 거쳐 수집된 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관측자료가 가지는 대표성 문제가 있다. 검증 과정을 거친 자료도 아니기 때문에 측정오차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도 크다.

이런 문제의 해결책은 예산 지원을 통해 패널조사를 보강하는 것이다. 이미 늦은 감은 있다. 사실 근로장려금의 효과를 보기 위해선 근로장려금 확대 지급 전인 지난해 혹은 올해 초에 조사가 진행됐어야 했다. 만시지탄이지만 늦게라도 표본을 보강하는 것이 낫다. 그래야만 2~3년 뒤 정책을 평가할 때 자료가 없어 평가하지 못하는 오류를 예방할 수 있다. 향후 예산 과정에서 노후화된 패널의 보강이 반드시 반영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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