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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4 18:10 수정 : 2019.10.14 20:26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벌써 10년도 넘은 일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막 도입된 2008년, 장기요양서비스 이용 현황에 대한 현장연구에 참여했다. 한 40대 남성은 노모를 병원에 모셔 다달이 300만원 넘게 내던 병원비 걱정을 덜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밤마다 소리 지르는 시어머니의 치매가 깊어질수록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주부에게 남편이 인근에 생긴 구립장기요양시설 얘기를 꺼냈다고 했다. 시아버지마저 같이 못 살겠다고 나가고 중고생 아이들이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게 된 지 한참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노인의 가족은 아내건 딸이건 직접 돌보다 한차례 쓰러지고 나서야 장기요양서비스로 눈을 돌렸다고 말했다. 장기요양은 가족이 최선을 다하다가 마지못해 선택하는 차선이라고 했다. 가족이 모든 돌봄 책임을 도맡아오던 오래된 규범과 관행은 새롭게 맞닥뜨린 환경과 제도 앞에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10년이 지났다. 그 당시 약 20만명이던 장기요양 인정자(이용 자격이 되는 요양 등급을 받은 사람)가 현재 77만명까지 늘었다. 65살 이상 인구의 13%가 장기요양서비스를 받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015년 기준)보다는 낮다. 하지만 이 평균 수준에 도달할 날이 그리 멀지는 않은 것 같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의 인구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다. 앞으로 6년 뒤면 65살 이상 고령 인구는 1천만명을 넘고 30년 뒤인 2050년엔 1900만명으로 인구의 40%에 도달할 것이라고 한다. 돌봄을 많이 필요로 하는 85살 이상 초고령 인구도 단 5년 뒤면 100만명을 넘어설 것이며 30년 뒤엔 400만명 수준을 내다본다.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노인 대다수는 성인이 된 자녀와 따로 산다. 2017년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노인의 23.7%만이 자녀와 같이 살고, 자녀와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노인은 이보다 더 적어 15.2%에 그쳤다. 세대 구성만 따로 하는 게 아니다. 생계도 따로 꾸린다. 70살 미만 젊은 노인 가운데 오직 3%만이 노후 생계를 자녀에게 의지하겠다고 답했다. 전체 노인 81.8%는 노후 생계는 본인과 사회보장제도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응답했다. 돌봄이라고 과연 다를까? 가족 구성이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동성도 커지고, 부모도 자녀도 다 같이 노인이 되어 살아가는 시대에 가족이 노인 돌봄의 중추적인 역할을 도맡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리 사회가 가족을 노년기 돌봄의 조력자이자 협력자로 생각하고 정책을 펼쳐야 노인 돌봄의 사각지대가 덜 발생하고, 가족도 숨을 돌리고 제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노년기 돌봄을 보장할 중추적 제도다.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는 장기요양보험제도를 운영하는 독일, 일본과 비교하여 우리 제도가 적용 대상자 범위가 좁고 급여 종류가 적으며 본인부담 수준은 높은 편이라고 진단한 보고서를 내놨다. 독일이나 일본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다양한 서비스를 더 적은 본인부담금으로 제공할 수 있는 이유는 더 높은 장기요양보험료를 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소득 대비 0.55%(2019년 기준)의 보험료를 내는 데 비해 일본은 1.3~1.58%, 독일은 2.6%(2015년 기준)를 내고 있다. 건강보험료의 4.05%(소득 대비 0.21%)로 시작한 장기요양보험료는 2010년 6.55%로 인상한 뒤 7년간이나 동결돼 있었다. 그동안 치매특별등급이 생기고 인정자는 20만명이나 더 늘었다. 2016년에 이미 적자가 발생했지만 보험료 인상을 늦추다가 2018년부터 두해 연속 인상하여 현재 건강보험료의 8.51%(소득 대비 0.55%), 세대당 평균 9069원을 납부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8조원이 넘을 지출은 장기요양 수급자가 100만명으로 늘어날 2021년에는 11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확대는 불가피하다.

더 많은 재정과 더 좋은 장기요양이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국민이 흔쾌하게 재정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제도에 대한 신뢰가 필수적이다. 제도에 대한 신뢰는 국민들의 서비스 이용 경험을 통해 쌓인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경우 국민들은 일선 장기요양기관을 접하고 요양보호사를 만나면서 제도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게 된다. 이 신뢰의 수준과 보험료 수준이 정비례한다는 점을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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