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03 18:15
수정 : 2019.11.04 09:31
류영재
춘천지방법원 판사
그날도 평범하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특별법)상 촬영 범죄를 심리했다. 증거사진들을 받아 보는데 흔히 생각하는 ‘음란한’ 사진들이 아니었다. 무수한 맨발들이 찍혀 있었다. 피고인은 맨발에 성적 흥분을 느끼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그 사진들을 게시했다. 사람들은 맨발이 찍힌 각도와 촬영 경위에 따라 얼마나 더 몰래 찍혔는지를 평가하고 성적 흥분을 나타내는 댓글들을 달았다.
피고인은 맨발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 부위는 아니라며 무죄 항변을 했다. 검사는 맨발 사진은 성적 의도로 찍혀 소비되었기 때문에 성범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법대는 피고인과 검사를 동시에 바라본다. 법대에 앉은 나는 이 사건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 한여름 내가 수도 없이 드러내놓고 다녔던 맨발과 그 맨발에 성적으로 흥분했음을 나타내는 댓글들 사이에서 말이다.
성폭력특별법상 촬영 범죄는 타인의 신체를 무단으로 촬영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범죄가 아니다. 타인의 신체를 몰래 찍으면 인격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가 된다. 그러나 더 나아가 성범죄가 되기 위해서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부르는 신체를 촬영했을 것’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부르는 신체’가 무엇인지를 ‘일반인의 관점’에서 판단하며 그런 신체 부위가 촬영물에 담겨야만 성범죄가 된다고 해석하는 입장이 있다.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행인들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사진만을 내밀어도 대부분이 ‘이 사진 야하네요’라는 반응을 보여야 한다. 이와 같은 입장에 서면, 무단촬영된 신체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부르는 신체’에 해당하는지 여부, 즉 가슴이나 엉덩이, 속옷 부위나 노출된 부위를 찍었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심리하게 된다. 맨발은 야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입장에 대해선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된다.
성폭력특별법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였다면 그 촬영은 성범죄가 된다’고 규정한다. 성범죄 개념의 혁명적인 확장이다. 기존 우리 법체계는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신체접촉을 통해서만 침해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기술은 발전하고 촬영 장치가 광범위하게 보급됐으며 촬영물을 유포시킬 인터넷이 등장했다. 피해자는 직접적인 신체접촉을 통하지 않아도 영상화되어 성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단으로 소비되고 있다. 성폭력특별법은 이런 현실을 반영해 타인을 성적 소비 수단으로 이미지화하는 행위도 성범죄가 된다고 새로이 규정한 것이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촬영물이 반드시 ‘음란’할 필요는 없다. 음란하든 음란하지 않든 피해자의 신체를 성적 대상화해서 무단으로 촬영했고 성적으로 소비했다면, 그 촬영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행위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란물 유포와 성폭력특별법상 촬영 범죄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촬영한 사람, 촬영된 사람, 사진을 보는 사람 모두 그 사진을 성적인 의미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제3자가 ‘내가 보기에 그 사진이 음란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 무단촬영은 성범죄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혼동이 빚은 결과다. 나아가 사람의 신체 부위 중 ‘성적인 욕망이나 수치심을 부르는 신체’가 별도로 정해져 있는지도 의문이다. 사람의 신체 중 어디가 성적인 욕망이나 수치심을 부르는 부위이고 어디가 그렇지 않은 부위인가. 그것은 누가 구분하는가.
이 같은 입장에서는 촬영 의도, 촬영물의 소비 형태, 피해자의 반응 등에 비추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됐는지 여부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촬영물 자체만 놓고 보면 소위 ‘야하지 않더라도’, 맥락을 고려해서 촬영 대상자들이 성적 수단으로 소비됐다면 성범죄라고 해석한다. 맨발은 야하지 않지만 피고인은 성적 의도로 맨발을 몰래 찍었고, 그 사진을 본 사람들은 성적 흥분을 느꼈다.
성폭력특별법상 촬영 범죄를 심리할 때 판사들은 위 두 입장의 중간쯤에서 헤맨다. 맨발 사건도 그런 헤맴을 거쳤다. 시민들의 논의는 판사들의 헤맴을 정리시킬 것이다. 헤맴의 끝에 모두가 ‘무단촬영 당하여 타인의 성적 욕망 충족의 수단으로 소비될 위험’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에 도달할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묻건대, 맨발 몰카는 성범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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