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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5 18:10 수정 : 2019.11.06 13:01

우석진 ㅣ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미시경제학을 공부하다 보면 슬루츠키 방정식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슬루츠키 방정식은 재화의 가격이 올랐을 때 수요량이 얼마나 변하는지를 상대가격의 변화로 인한 부분과 실질소득의 변화로 인한 부분으로 분해하여 표현한 것이다. 이론상으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 실증분석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최근에 필자는 슬루츠키 방정식을 학부생에게 가르쳐야만 하는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슬루츠키 방정식은 경제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이지만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아니다. 슬루츠키 방정식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선 미분을 알아야 하고, 이를 응용하기 위해서는 적분을 배워야 한다. 경제학적으로 표현해보면, 학부생에게는 슬루츠키 방정식의 비용 대비 편익이 그리 크지 않다. 배우기는 어려운데 정작 쓸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슬루츠키 방정식과 관련된 고민의 밑바탕에는 필자가 가르칠 수 있는 것과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 사이의 괴리가 있다. 그 괴리는 개인적인 나태함에도 원인이 있지만 구조적인 원인도 있다.

학부생을 대상으로는 대학과 대학원에 다니면서 배웠던 것들을 가르친다. 일부 필자가 새롭게 연구했거나 남들이 새롭게 연구한 결과물들도 가르치기도 하지만, 수업 내용의 대부분은 학부생 때, 대학원생 때 배웠던 것들이다. 경제학이 대체로 잘 정립된 학문 체계를 갖춰 배웠던 것을 그대로 가르쳐도 학생들에게 경제학을 무난하게 가르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세상이 요구하는 지식도, 배우는 학생들의 수준도 크게 변하고 있다. 제일 중요한 점은 모든 학생들이 학자가 되기 위해 경제학을 배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슬루츠키 방정식으로 대표되는 내용을 학부생이 배울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비단 경제학만의 일은 아니다.

사실 어렵고 쓸모가 그다지 있지 않은 내용을 가르치면서도, 기초체력이 좋아야 운동을 잘할 수 있듯이 어려운 내용이 언젠가 쓸모 있어질 것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건 군대에서 힘든 유격훈련을 받은 뒤 힘이 세진 것도 같고 전투도 잘할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이유하고 같은 것이다. 일종의 극기훈련일 뿐 배운 학생들이 지식을 쌓는 데 유용한 것은 아니다.

이제는 학자가 되기 위해 배웠지만 다수 학생들에게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내용을 수업에서 덜어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제 지식의 생산자를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경제 지식을 이용해 다른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훌륭한 경제 지식의 소비자를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돼야 할 것 같다.

쓸모없는 것을 덜어내는 데 그쳐선 안 된다. 학생들에게 쓸모있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했다고들 한다. 이공계는 여러 통로로 학생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인문사회계의 현실은 어떠한가. 말로는 4차 산업혁명을 떠들고 다니지만 정작 교수 본인들조차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에 대해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실정이다. 인문사회계 학생들의 불안은 고조되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채 낯선 세상과 만나야 하는 학생들의 불안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준비시켜 줄 수 없다면 직무유기다.

인문사회계 학생들에게 코딩을 가르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코딩 안에는 인문학이 혹은 사회과학이 없기 때문이다. 코딩은 도구일 뿐 인문사회학적 이해와 상상력은 인문사회학적 훈련에서 나오게 된다. 융합교육이 절실한 이유다. 필자는 지난 2년간 인문사회계 학생들을 위한 데이터 사이언스 연계 전공을 개설하고 빅데이터와 사회과학 전공의 융합을 위해 노력해왔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사회과학, 법학, 인문학에 주 전공을 두고 데이터 사이언스를 배우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더디지만 분명히 앞으로 가고 있다. 어렵지만 인문사회계에서의 융합교육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난 몇주간 우리 사회는 대입에서 정시 비율을 확대할 것이냐 아니면 현행대로 수시 비율을 유지할 것이냐로 익숙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두마디씩 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을 정시로 줄 세우든 수시로 줄 세우든 대학에서 어떤 교육을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대학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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