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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0 18:57 수정 : 2019.11.21 09:37

조문영ㅣ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홍콩 시위를 두고 한국 대학생과 중국 유학생 간의 갈등이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시위대를 지지하는 한국 학생들의 대자보를 중국 학생들이 훼손하는 일이 잦아지고, 언론이 앞다퉈 양쪽의 관계를 화해 불가능한 대립으로 몰고, 인터넷 댓글에 한 나라를 “싸구려” “삼류” “암적 존재”라 모독하는 발언들이 버젓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 이미 차고 넘치는 중국 혐오를 문제 삼는 일이 갈수록 요원해지는 형국이다.

중국 유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국가의 삶과 일치시키는 모습, “중국은 하나다” “폭력은 민주가 아니다” “내정간섭 말라”며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논평을 그대로 반복하는 모습 또한 안타깝긴 매한가지다. 시위 도중 발생한 폭력만을 문제 삼은 탓에 광주 시민들이 십수년간 “폭도”라 불리지 않았는가. 자유와 존엄을 지키려는 홍콩 시민들의 열망이 얼마나 강렬한지, 수십년간 ‘양제’(兩制)의 합의가 ‘일국’(一國)의 이데올로기에 빈번히 종속되면서 내면화된 절망 또한 얼마나 뿌리 깊은지 헤아릴 수 있는 기회가 중국에서도, 자신의 모국을 일방적으로 조롱하는 한국에서도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수업을 듣고 있는 중국 학생은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다. “한국에 와서 내 나라를 새롭게 돌아볼 기회가 생겼어요. 중국에서는 접속하기 힘들었던 온라인 채널을 통해 내가 아는 중국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았죠. 하지만 보도나 댓글이 너무 일방적이고 우리를 악마화하니 화가 나요.”

허자오톈이 <현대 중국의 사상적 곤경>에서 썼듯이, 중국에 대한 해외의 비판은 “사실 중국 사회에 대해 중국 사람들 자신이 늘 비판하는 내용과 별 차이가 없다.” 중국 당-정부와 지식인 집단은 서구 중심적 근대 질서가 야기한 일련의 파국을 극복하고 세계의 문제를 사유하고 세계를 책임지는 주체로 ‘중국’ 위치를 부단히 고민해 왔으나, 현실은 그들 스스로 발언을 아껴야 할 만큼 지리멸렬하다. 중국이 제 사회와 세계의 다원성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강조한 ‘화해’(和解)는 중국 인민들이 “화해당했다”는 표현을 즐겨 쓸 만큼 힘없는 사람들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는 수사로 전락했다. 한동안 전세계 중국학계를 들썩였던 ‘중국모델론’이나 ‘베이징 컨센서스’도 생기를 잃었고, 중국이 21세기 새로운 세계질서 구상으로 야심차게 공표했던 ‘일대일로’마저 패권주의 비판이 거세지면서 영문명을 ‘원 벨트, 원 로드’(One Belt, One Road)에서 ‘벨트 앤드 로드 이니셔티브’(Belt and Road Initiative)로 변경했다.

그런데 이쯤에서 상기해야 할 것은 중국 바깥의 세계 또한 지리멸렬하긴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트럼프 시대 이후 미국은 패권주의를 상쇄하는 데 부분적으로나마 기여했던 소프트파워를 내다 버렸고, 영국의 브렉시트 논쟁은 자문화 중심주의와 결탁한 민주주의의 위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벽’으로 가로막힌 미국-멕시코 국경 주변의 사막에서 고고학자들은 통조림 캔과 옷가지를 수집하며 주검이 되기 직전까지 사투를 벌였던 이주자들의 흔적을 좇고 있다. 21세기의 민주주의는 ‘국민’을 금 긋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믿는 내게 저 ‘트럼프 벽’은 중국 정부가 ‘취업훈련소’라 명명한 신장 위구르인 강제구금시설만큼이나 폭력적이다.

한국은 예외인가? 2019년 가을 한국 사회를 삼킨 이른바 ‘조국 사태’는 “타는 목마름”으로 외쳤던 민주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각자에게 물음표를 남겼다. “타자를 정말로 ‘타자’로 삼지 않는데다 ‘자아’에 대한 이해도 너무나 협애하다”는 허자오톈의 중국 사회 비판을 한국 사회에 소환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말 몇 마디에 ‘우리’와 ‘그들’의 패를 가르느라 분주했다. 대자보를 찢은 중국 유학생들이 “토론과 논쟁이라는 건강하고 민주적인 방식을 훼손”했다며 민주의 선배 노릇을 할 자격이 있는지 반문하게 된다.

홍콩 시민들은 2019년 중문대와 1987년 연세대의 시위 풍경을 포개며, 영화 <택시운전사>와 <1987>의 감동을 전하며 한국 사회의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우리는 당연히 그 절박한 호소에 응답해야 한다. 동시에 대학에서 일터까지 한국 사회 곳곳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중국인들에 대한 경멸과 적대를 멈추고, 이 시대 계륵이 되어버린 ‘민주’를 모두의 존엄을 위한 가치로 되살리는 협업에 이들을 초대할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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