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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8 18:08 수정 : 2019.11.29 02:38

황필규 ㅣ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탈북자를 처음 접한 건 20여년 전 중국 내 한 총영사관 안에서였다. 남한행을 호소하는 탈북자를 호통치며 내쫓는 한 정보기관 영사의 모습에서 탈북자를 활용 가치에 따라 달리 취급하는 권력을 봤다. 그 후 크고 작은 권력이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이념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탈북자 문제를 어떻게 그때그때 다르게 다루는지를 봤다. 인권을 내세웠더라도 마찬가지다. 그 과정에서 힘없는 탈북자들은 배제되고 통제되고, 낙인찍히고 대상화되고, 이용되고 버려진다.

많은 탈북 난민들은 제3국행을 택해 난민신청을 한다. 왜 한국이 아니냐고? 이념적 의심의 대상이 되는 이등국민이라는 구조적 낙인과 차별이 싫다. 그런데 상당수 국가에서 탈북 난민은 한국법상 한국 국민이라는 이유로 난민 인정을 거부당하고 보호를 받지 못한다. 정부의 입법적·정책적인 해결을 촉구하고 여러 분들에게 함께 고민하자고 제안했다. “탈북은 결국 지원금 받으려는 것 아니냐” “한국 싫어 다른 나라 갔는데 우리가 왜?”가 돌아온 답이었다. 탈북자에 대한 선별적 적용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한국 법체계가 이들에 대한 국제적 보호를 가로막고 있지만 박해를 당하건 말건 한국에 오지 않은 이런 탈북자는 그냥 ‘남’일 뿐이다.

남한행을 택한 모든 탈북자들은 입국과 함께 중앙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수개월 동안 구금된다. 보호 여부나 정착 지원 내용을 결정하는 행정절차로 규정된 법은 현실에서 국가정보원 주도의 비밀구금으로 둔갑한다. 탈북자들은 잠재적 간첩으로 규정되어 불법수사를 당하고, 정보 수집의 수단으로 전락해 삶의 모든 기억이 털리는 인권유린을 경험하게 된다. 탈북자들에게 변호인 접견을 보장하겠지만 그 방법은 모르겠다는 국정원 센터장의 횡설수설은 그렇다고 치자.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속물 탈북자들의 징징거림 정도로 치부하는 북한인권단체 간부, 피구금자의 최후의 보루인 법원에 대한 인신구제 청구권을 탈북자로부터는 박탈하자는 법안을 낸 보수정당의 국회의원은 어떻게 봐야 하나. 이 극단적인 인권침해 상황은 구금의 배제·최소화, 형사절차와 행정절차의 주체와 절차의 분리만 있으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중국에 있던 일부 북한 식당 종업원들이 속아서 한국에 왔다. 이들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국정원과 정부에 의해 이들의 한국행이 공개됐다. 그리고 현재 적어도 이들 중 일부는 한국에 남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보다 좋은 한국에 살게 되었으니 해피엔딩인가. 잘못하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르니 이제 없었던 일로 넘어가야 하는가. 정권의 변화에도 정부는 침묵하고, 종업원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는 이들은 북한인권단체들로부터 욕을 먹는다. 강제납치가 있었고 이를 부정하는 강제실종이 있었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안위에 대한 책임을 납치 피해자인 종업원들에게 돌리고 이들의 침묵을 강요할 수는 없다. 과거 정권이 벌인 정치공작의 산물이라 하더라도 국가적인 범죄의 주체인 정부가 나서서 진상을 밝히고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처벌하고, 관련자들의 안전 보장 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보호를 요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중범죄자라는 이유로 탈북자 2인이 북송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정부는 국내법과 국제법을 넘나들며 일관되지 못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지만 어느 법에 의하더라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한국 국민이라면 애초부터 추방의 개념은 성립될 수 없고, 북한이탈주민 관련 법상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해명은 자의적인 법해석을 자백하는 것일 뿐이다. 남북관계의 특수한 성격을 전제로 탈북자를 사실상 외국인으로 다루는 경우에도 국제조약과 관습법상 강제송환 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었다고 봐야 한다. 사실상 범죄인 인도라고 해석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탈북자에 대한 자의적, 편의적 취급이 또 하나의 피해자들을 만들어냈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국내법과 국제법을 종합적으로 살피고 기존 관행의 법제화 혹은 근절을 통해 전체적이고 일관된 탈북자 인권 보호 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 인권을 내세웠으면 인권적 일관성은 있어야 한다. 이념적 좌우 모두 마찬가지다. 국민의 안위, 탈북자의 인권을 내세운 여러 행태들의 선별성, 예측 불가능성에 탈북자들은 오늘도 인권침해 피해자로서의 삶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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