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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17 17:43 수정 : 2019.12.18 02:36

권김현영 ㅣ 여성학 연구자

20대 초반에 통신회사의 국제전화 교환수로 야간노동을 3년 정도 한 적이 있다. 저녁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주일에 3일을 일했다. 가끔 연휴 때 4~5일 연속 근무를 해야 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1.5배 특별수당을 받고 쉬는 시간도 넉넉하게 주어서 할 만했다. 외환위기 이후 모든 게 다 무너졌다. 고용조건은 급격하게 나빠졌다. 보수도 보수지만 사람들이 갑자기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는 방식으로 달라진 게 충격이었다. 파견은 더했다. 소속이 달라지자 가장 먼저 ‘인간적’인 부분부터 사라졌다. 바쁜 시간에는 2시간이 넘어도 쉬는 시간을 배정해주지 않았다. 그런다고 해서 업무효율성 측면에서도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는데 왜 그렇게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태도부터 달라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마 전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을 고쳐 주당 109시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주당 109시간은 일주일 내내 15.5시간을 일해야만 달성 가능하다. 8.5시간 동안 식사, 수면, 이동을 다 해결해야 하고 세면·화장실 이용 시간 등을 포함하면 사실상 잠잘 수 있는 시간은 3~4시간에 불과하다. 이렇게 일하면 당연히 한 인간의 신체는 견뎌내지 못한다. 사람을 갈아치우는 부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노동력을 경영상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탈인격화된 상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발상이다.

노동에 대한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사회는 아주 빠르게 그리고 끔찍한 수준으로 타락한다. 전쟁은 그 처참한 결과 중 하나였다.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의 설립 목적은 “사회적 정의를 이루어 항구적인 평화를 실현하고자 함”이었다. 노동을 존중하지 않은 사회에서 학대, 약탈, 착취가 일상화되었고 결국 전쟁과 같은 파국으로 이어졌다는 건 역사적 사실이었다. 이후 국제노동기구는 2차 세계대전에서 얻은 교훈을 추가한다. 1944년 필라델피아에서 선포된 선언은 이렇게 시작한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왜 노동이 상품이 아니어야 하냐면, 노동이 상품이 되었을 때 인간성의 근본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가격이 매겨졌고 쓸모로서 증명되어야 했으며 하층계급에 있는 사람들은 노예제와 다를 바 없이 착취와 모욕을 당했고 아동 인신매매가 횡행했다. 먼 나라의 과거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해마다 2천여명의 노동자가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이들 대부분이 하도급 파견업체의 간접고용 노동자다. 위험의 외주화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사고에 대한 책임 여부를 묻는 것을 넘어선 문제다.

우리 사회는 서로를 인격적으로 대할 능력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 이것은 노동이 인격이 아니라 상품이 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근로계약이 없는 상태에서 사용자의 책임이 고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노예제와 다를 바 없다. 다시 강조컨대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노동자는 노동력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제공’하는 것이다. 노동력의 제공자와 사용자는 계약의 상호 당사자로서 기본적으로 동등하다. 여기에는 인간의 존엄성은 논증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그 자체로 원칙이라는 정신이 기본으로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유연화라는 명목으로 파견업을 무차별적으로 확장한 결과 작업장에서는 똑같은 일을 해도 신분에 따라 다르게 대우받는 경험이 쌓였고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동등한 계약은커녕 근로계약관계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 인격은커녕 상품가치조차 후려쳐졌다.

그 경험치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에 비인간적 대우라는 차별의 상흔으로 남았다. 노동이 상품화된 만큼 돈으로 사고팔 수 없는 것들의 한계도 점점 흐려지고 있다. 노동만큼이나 성도 인격과 분리되기 어려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지배적인 젠더 질서를 매우 쉽게 향유할 수 있게 하는 행동을 유도하는 고연결 기술 기반의 정보통신사회에서 무한한 수준으로 확장된 성의 상품화는, 여성을 인격이 아니라 기호화된 이미지로 소비하는 데 점점 익숙해지게 만들고 있다. 그 결과, 최근 인간성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경제가 어렵다고들 한다. 그 경제는 누구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 실제로 차별과 모욕에 일상적으로 노출되고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경제가 어렵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는 게 힘들다고 한다. 과연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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