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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5 17:28 수정 : 2019.12.26 09:25

전병유 ㅣ 한신대 교수·경제학

지난주 정부는 ‘인공지능(AI) 국가전략’을 발표했다. 울림과 반향이 약하다. 이세돌과 한돌의 대국이 더 관심을 모았다. 이제 인공지능은 환호와 두려움의 대상에서 이해와 활용의 대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제조업뿐 아니라 운송과 물류, 에너지와 환경, 건강 등의 영역에서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2030년까지 세계 경제가 15조달러 늘어난다고 한다. 우리나라 규모의 경제가 매년 하나씩 만들어지는 셈이다. 인공지능은 미국과 중국이 국가 안보를 넘어서 미래 세계와 인류에 대한 통제 권력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는 영역이기도 하다.

당연히 많은 국가들이 관심을 가진다. 30곳 넘는 국가들이 인공지능 국가전략을 제시했다. 독일 아데나워재단은 각국의 인공지능 전략을 비교평가하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경제포럼(WEF)이 제시한 인공지능 국가전략의 설계와 실행지침 권고를 보면, 데이터 보호와 활용, 연구개발, 전략투자분야, 인공지능 인력, 국제협력 등이 핵심 요소로 꼽힌다. 또 선도적인 인공지능 기업, 활발한 창업 생태계, 역동적인 연구 문화,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과 제도가 성공 요소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인공지능 전략도 이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특히 우리의 특장점을 살려, 반도체 세계 1위를 목표로 2030년까지 인공지능 강국이 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동안 스마트 알고리즘이 인공지능 발전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하드웨어가 주도하는 국면이다. 인공지능은 이미지 인식을 넘어 이해와 추론의 영역인 음성인식과 언어 영역으로 발전하면서 엄청난 데이터 처리 능력을 요구한다. 인공지능의 학습능력 개선에 필요한 데이터 처리 용량이 3.4개월마다 두 배씩 늘어나는데, 기존 하드웨어는 무어의 법칙을 따라가기에도 바쁘다. 이에 따라 인공지능 학습능력 제고에 적합한 칩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칩 회사가 아닌 구글과 알리바바는 독자적인 인공지능 칩을 개발했고, 미국 스타트업 세레브라스는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를 통합한 거대 인공지능 칩을 개발했다. 칩 전쟁은 거대기업뿐 아니라 국가 간 힘의 균형도 바꾸어놓을 수 있다. 이미지-음성 인식이나 자율주행뿐 아니라 감시시스템과 자율무기에서의 우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인공지능 전략은 거대기업에 의존하는 허약한 인공지능 생태계라는 문제를 안고 있는데다, 데이터 보호와 활용 문제에 대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 칩은 메모리칩과 달리 거대기업 주도 전략보다는 선도기업과 스타트업이 공존하는 혁신 생태계 전략을 필요로 한다. 규제 때문에 인공지능 스타트업이 창출되지 않고 대기업은 해외 스타트업만 인수합병한다고 하지만 규제완화만으로 인공지능 생태계가 구축되는 것은 아니다. 광주에 구축하기로 한 인공지능 클러스터는 정부와 학계를 포함하는 다중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개방형 혁신 생태계로 구축돼야 한다. 대기업과 달리 스타트업과 대학, 개인이 인공지능을 설계하고 테스트할 만한 컴퓨팅 용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인공지능 전략은 99% 데이터 전략이다. 데이터 전략에서 인공지능 전략의 차별성이 드러난다. 미국은 정보기술(IT) 거대기업과 스타트업들이 주도하고 개인과 사회는 데이터만 제공한다. 중국은 기술과 데이터를 모두 국가가 주도한다. 유럽은 데이터 독점에 반대하면서 개인정보보호와 윤리적 인공지능, 데이터의 공적 활용을 강조한다.

전세계 최대 인공지능 스타트업인 중국의 센스타임은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투자를 받기도 했지만, 사실상 중국 정부의 막대한 투자와 공공안보국의 인민 데이터 제공으로 만들어진 기업이다. 이 기업이 주도하는 안면인식기술은 세계 52개 국가에 수출된다. 정치적 동원에 대처하는 기술, 권위주의의 수출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유럽연합(EU)은 ‘유렵연합 공동의 데이터 공간’을 구축하여 공간·환경·기후 데이터를 유럽 수준에서 자유롭게 이용하자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은 데이터의 보호·개방·공유의 개념을 넘어 데이터의 신탁(data trust) 개념을 국가 인공지능 전략에 포함시켰다. 조직과 기업 간에 데이터를 윤리적으로 쉽게 공유하면서도 공동으로 모니터링하는 ‘데이터 신탁’을 구축하자는 아이디어를 채택한 것이다. 자국 언어 사용 규모가 작은 덴마크는 자국 언어 데이터의 축적과 공유에 관심이 많다. 자국 언어기술 개발을 위해 개방·공유되는 언어 자원 축적이 덴마크 인공지능 전략의 하나다.

우리의 인공지능 전략에는 데이터 모델 구축에 관한 철학과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국회 처리가 불발한 데이터 3법도 기업의 개인정보 접근성 문제에만 집중한다. 인공지능 혁신의 핵심 주체인 대학, 스타트업, 개인의 데이터 접근성을 보장하고 데이터의 공적 활용을 위한 대안은 찾아보기 힘들다. 2021년까지 공공데이터를 전면 공개한다는 계획을 담기는 했지만 불가능에 가깝다. 시장 모델인 미국도 스타트업과 대학, 개인과 공공이 데이터 경쟁에서 대기업에 뒤처지지 않도록 ‘인공지능을 위한 공공옵션’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인공지능 전략은 2017년에 오이시디 35개국 중 4위였던 정부 인공지능 준비지수가 올해 17위로 추락하면서 급조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만큼 울림과 방향이 부족하다.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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