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10년 넘게 알던 동네친구 둘이 이번 지방선거에 예비후보자로 등록을 했다. 덕분에 동네정치의 내면을 엿볼 기회가 생겼다. 내 눈에 비친 동네정치 구성원들은 크게 두 집단으로 나뉘었다. 한 집단은 짧은 주기로 이사를 다니느라 혹은 먹고살기 바빠서, 동네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마을버스가 지나는 길목마다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의 현수막이 늘어선 선거철이지만 현수막에 적힌 이름 석 자도 생소한 사람이 태반이다. 또 다른 집단은 동네 거주 기간이 길고 거주지 중심 주민 커뮤니티에 밀착되어 있어서 동네 돌아가는 정보도 많고 정치인들에 대한 정보도 많다. 각자 관점은 달랐지만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동네정치 계보를 줄줄 읊고 판세를 설명해주었는데, 그저 놀랍기만 했다. 지금까지 동네정치는 대체로 후자에 의해 움직였다. 그들은 동네의 소소한 대소사를 챙기고 골목에 문제가 생기면 민원을 넣거나 로비를 해서 정책을 바꾸기도 하고 봉사단체를 꾸려 노인이나 아이들을 돌보기도 한다. 한마디로 지역사회에 여러모로 기여가 많았던 것이다. 우리 동네는 우리가 움직인다는 자부심도 상당했다. 반면 전자 집단은 동네 돌아가는 일에 굳이 관심이 없고, 누군가 그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선거 때 반짝 전화가 오고 문자를 받고 지하철역 주변에선 운동원들에게 홍보물을 받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다른 때는 아무도 그들에게 동네정치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얼핏 보면 매우 효율적인 역할분담 같기도 하다. 이해관계와 관심이 더 큰 주민들이 동네를 챙기고, 그렇지 않은 주민들은 그분들의 돌봄을 받는 대신에 그분들의 동네 권력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전자의 주민들은 후자의 주민들보다 훨씬 수가 많지만, 지방정부 정책 결정에 자신의 요구를 투영할 방법을 갖지 못한다. 지방정부의 필요를 느낄 기회가 없거나 배제되어 있다고 느끼는 주민들은 지방정부에 대한 효능감이 매우 낮다. 지방정부, 지방의회 무용론이 횡행해도 별다른 저항감이 없거나 적극적인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지방정부의 정책과 재정은 점점 더 이들의 손을 떠나는 악순환의 사이클이 돌아간다. 청와대와 여의도가 개헌 논의로 뜨겁다. 국회 쪽에서 나온 여러 버전의 개헌안이나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 모두 자치·분권을 큰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분권이 청와대와 국회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으로, 다시 주민공동체로 분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면, 자치는 주민 스스로의 통치를 의미한다. ‘주민들이 지방정부를 활용해 더 많은 결정과 재정의 권한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으로, 현재 논의되는 개헌의 방향을 정리할 수 있겠다. 개헌이 될지 안 될지, 어떤 안으로 개헌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권 자치 강화라는 방향이 현실이 되려면, 지방 행정부와 지방의회에 다수 주민의 실질적 영향력이 미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분산되는 권력은 더 많은 지방정치 무용론자들을 양산해낼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 6월 지방선거에서 우리 동네 기초의회 의원이 되려고 나선 사람들의 이름 석 자라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 많은 주민들이 동네 정치인과 만나고 지방의회, 지방 행정부에 참여할 기회를 갖도록 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자치·분권이라는 방향은 ‘그저 좋은 것’을 넘어 현실정치를 변화시키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칼럼 |
[야! 한국 사회] 동네정치와 자치분권 / 서복경 |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10년 넘게 알던 동네친구 둘이 이번 지방선거에 예비후보자로 등록을 했다. 덕분에 동네정치의 내면을 엿볼 기회가 생겼다. 내 눈에 비친 동네정치 구성원들은 크게 두 집단으로 나뉘었다. 한 집단은 짧은 주기로 이사를 다니느라 혹은 먹고살기 바빠서, 동네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마을버스가 지나는 길목마다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의 현수막이 늘어선 선거철이지만 현수막에 적힌 이름 석 자도 생소한 사람이 태반이다. 또 다른 집단은 동네 거주 기간이 길고 거주지 중심 주민 커뮤니티에 밀착되어 있어서 동네 돌아가는 정보도 많고 정치인들에 대한 정보도 많다. 각자 관점은 달랐지만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동네정치 계보를 줄줄 읊고 판세를 설명해주었는데, 그저 놀랍기만 했다. 지금까지 동네정치는 대체로 후자에 의해 움직였다. 그들은 동네의 소소한 대소사를 챙기고 골목에 문제가 생기면 민원을 넣거나 로비를 해서 정책을 바꾸기도 하고 봉사단체를 꾸려 노인이나 아이들을 돌보기도 한다. 한마디로 지역사회에 여러모로 기여가 많았던 것이다. 우리 동네는 우리가 움직인다는 자부심도 상당했다. 반면 전자 집단은 동네 돌아가는 일에 굳이 관심이 없고, 누군가 그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선거 때 반짝 전화가 오고 문자를 받고 지하철역 주변에선 운동원들에게 홍보물을 받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다른 때는 아무도 그들에게 동네정치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얼핏 보면 매우 효율적인 역할분담 같기도 하다. 이해관계와 관심이 더 큰 주민들이 동네를 챙기고, 그렇지 않은 주민들은 그분들의 돌봄을 받는 대신에 그분들의 동네 권력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전자의 주민들은 후자의 주민들보다 훨씬 수가 많지만, 지방정부 정책 결정에 자신의 요구를 투영할 방법을 갖지 못한다. 지방정부의 필요를 느낄 기회가 없거나 배제되어 있다고 느끼는 주민들은 지방정부에 대한 효능감이 매우 낮다. 지방정부, 지방의회 무용론이 횡행해도 별다른 저항감이 없거나 적극적인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지방정부의 정책과 재정은 점점 더 이들의 손을 떠나는 악순환의 사이클이 돌아간다. 청와대와 여의도가 개헌 논의로 뜨겁다. 국회 쪽에서 나온 여러 버전의 개헌안이나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 모두 자치·분권을 큰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분권이 청와대와 국회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으로, 다시 주민공동체로 분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면, 자치는 주민 스스로의 통치를 의미한다. ‘주민들이 지방정부를 활용해 더 많은 결정과 재정의 권한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으로, 현재 논의되는 개헌의 방향을 정리할 수 있겠다. 개헌이 될지 안 될지, 어떤 안으로 개헌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권 자치 강화라는 방향이 현실이 되려면, 지방 행정부와 지방의회에 다수 주민의 실질적 영향력이 미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분산되는 권력은 더 많은 지방정치 무용론자들을 양산해낼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 6월 지방선거에서 우리 동네 기초의회 의원이 되려고 나선 사람들의 이름 석 자라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 많은 주민들이 동네 정치인과 만나고 지방의회, 지방 행정부에 참여할 기회를 갖도록 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자치·분권이라는 방향은 ‘그저 좋은 것’을 넘어 현실정치를 변화시키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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