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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11 18:24 수정 : 2018.04.11 19:37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언젠가부터 페미니즘 관련 글마다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관련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도 역시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댓글이 달리고 사회관계망서비스에도 앵무새처럼 같은 반응이 이어졌다.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페미니즘 발언을 하고 있으며, 실제로 페미니스트가 되면 돈을 번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페미니즘의 힘을 보여주자는 뜻에서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말이 나왔다. 이에 대한 여러 생각이 있지만 이 글의 주제는 아니다. 여기서는 이 말을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에 한정한다.

실제로 페미니스트로 돈을 벌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은 오히려 일자리를 잃거나 말도 안 되는 공격에 시달리는 경우다. 게다가 진짜 돈을 버느냐 아니냐를 떠나 흥미로운 지점은, 돈을 번다는 점을 공격의 요소로 삼는 태도다.

돈을 버는 게 왜 문제일까. 돈과 연결되면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통념이 있다. ‘위안부’ 생존자에게도 ‘돈 벌러’ 갔다고 하거나, 운동의 진정성을 비웃기 위해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고 한다. 이런 태도에서 여성혐오자들이 여성의 경제권 박탈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여성이 경제력을 갖는 현상을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여성 착취로 돈을 벌 수 있었던 구조의 붕괴를 두려워하는 속마음을 무의식중에 드러낸다.

여성 억압의 중요한 핵심 중 하나는 경제문제다. ‘남자는 능력이지’라는 말은 달리 말하면 소유의 주체는 남성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남성이 소유의 주체라면 여성은 소유 대상이다. ‘창녀’라 불리는 성판매 여성에 대한 유구한 혐오는 단지 도덕의 잣대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성으로 ‘돈을 번다’는 점에서 혐오는 상승한다. 그들이 쥐는 돈은 쉽게 버는 더러운 돈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직접적으로 남성의 돈을 받는다는 점에서 성매수자들은 양가적 감정을 지닌다. 성매매 산업은 지속되어야 하지만 성매매 여성이 힘을 가지기는 원치 않기 때문에 성매매 여성 혐오를 통해 그 여성들의 사회적 명예를 실추시킨다. 성산업은 성적 지배를 받아들일 때만 여성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의 극단적 상징이다.

성폭력 앞에서도 그저 돈타령한다. 폭행 사건이나 교통사고 후 배상금을 치른다 하여 이를 꽃뱀이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폭행은 절대적으로 돈을 요구하지 말아야 피해자의 순수성을 증명할 수 있다. 지금도 여전히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이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왜 그만두지 않았어? 너도 좋아한 거 아냐? 그렇게 피해자를 꽃뱀화시킨다. 반면 가해자들이 경제활동에 타격받으면 그에 대한 안타까움이 흘러넘친다.

정작 걱정해야 할 일은 ‘혐오가 돈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 여러 종류의 혐오 비즈니스다. 조회수와 광고수익이 중요한 인터넷 영상 매체의 1인 방송은 경쟁적으로 혐오를 생산하기도 한다. 심지어 범죄로도 돈을 번다. 디지털 성폭력 콘텐츠로 돈을 벌고 있는 이들이 누구인가.

페미니즘이 돈이 된다고? 마땅히 돈이 되어야 하는 면이 있다. 착취당하는 여성의 임금을 되찾아야 한다. 여성들은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 오히려 돈을 쓴다. 소비의 주체로만 여성을 한정 짓는 사회에서 ‘돈이 된다’는 말은 구매력의 과시로 축소되기 쉽다. 그러나 알기 위해, 피해자가 아니라 제 일상을 꾸리며 삶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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