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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31 17:12 수정 : 2019.01.01 10:04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보일러 대리점 정 대표. 직원 13명 중 10명이 정규직, 3명이 프리랜서다. 4대 보험에 가입하고 연차휴가를 주고 근로기준법을 지키려고 애쓴다. 보일러 업계에서는 대부분 직원을 쓰지 않고 하도급을 준다. 겨울철엔 시공을 더 많이 할 수 있고, 비수기인 여름에는 고정비용이 안 나가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저가경쟁이 심해져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다. 24평 기준 보일러 설치에 50만원 이상 드는데 인터넷을 검색하면 30만원대 광고가 넘쳐난다. 이런 업체들은 현장에서 연통이나 가스 연결관을 바꿔야 한다는 식으로 추가 비용을 요구해 인건비를 채운다. 정 대표는 기술을 제대로 익힌 엔지니어를 통해 가격이 아닌 품질시공과 사후관리로 고객의 신뢰를 얻는 길을 선택했다. 10년이 지나서야 조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최근 10명의 사상자를 낸 강릉 펜션 일산화탄소 누출 사고에 대해 그는 “터질 게 터졌다”고 말했다. 보일러 배기통이 분리돼 폐가스가 누출되면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한다.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업무인데 하도급, 재하도급이 활개 친다.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무자격 업자도 상당수다. 2018년에만 폐가스 누출 사고로 9명이 숨졌다. “보일러 업계도 직원을 채용해 전문기술 엔지니어를 육성하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에게 투자하면 성공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회사. 댕기머리 샴푸를 만드는 두리화장품은 직원 160명 중 90% 이상이 정규직이다. 입소문을 타고 샴푸가 잘 팔리자 유통망을 장악한 대기업들이 유사 제품을 헐값에 쏟아냈다. 회사는 직원의 사기가 좋은 품질로 이어진다는 믿음으로 임금 인상과 복지 향상에 힘썼다. 중국, 이란, 미국 수출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고용형태공시제에 따르면 화장품업계 1위인 아모레의 비정규직 비율(간접고용 포함)은 54.6%, 엘지생활건강은 24.9%다. ‘비정규직 제로’를 표방한 정부가 출범했지만 대기업의 비정규직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조사 결과 임시직 3년 후 정규직 전환율이 룩셈부르크 80%, 벨기에 71%, 네덜란드 70%인데 한국은 22%로 꼴찌였다. 유럽 청년들은 3년 정도 일하면 대부분 정규직이 되는데, 한국의 청년들 대다수는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쫓겨난다는 뜻이다. 2006년 11월 노무현 정부가 노동계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시킨 기간제법 때문이다. ‘비정규직 보호법’이 아니라 2년이 되기 전에 해고하는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는 비판이 국제 비교로 확인됐지만 정부와 여당은 반성이 없다. 민주당 정부가 만든 3대 노동악법(정리해고제, 파견법, 기간제법)으로 비정규직 1100만 시대가 됐는데, 악법을 없애겠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2017년 10월 정부는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에서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을 발표했다. 육아휴직, 출산휴가, 계절적 요인 등과 같은 사유가 아니면 비정규직을 쓸 수 없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연말 국회에서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는 김용균법이 통과됐지만 그가 하던 석탄운송 업무도, 보일러 시공도 김용균법을 적용받지 못한다. 5개 발전공기업에는 김용균씨가 하던 연료운전과 경상정비 5346명을 비롯해 비정규직 7700명이 일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용균씨 부모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정부가 김용균 업무 5천명에 대한 정규직 전환 입장을 밝히는 게 먼저가 아닐까?

새해에는 김용균씨 동료들과 보일러 대리점 정 대표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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