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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17 17:52 수정 : 2019.04.17 19:08

손아람
작가

극장에서 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웃음이 헤프고 오류에 관대한 관객들조차 슬픔을 받아들이는 데는 까다롭다. 동의하자마자 휘발하는 웃음이나 퍼즐 풀이와 같은 지적 쾌감에 비교하면, 눈물은 쉽게 내어줄 수 없는 개인적인 것임을 누구나 안다. 이 감정은 대체로 인간의 근원적인 약점에 결속되어 있다. 약점을 내어줄 때 사람들은 연대의 약속을 맺는다. 그런 중요한 약속을 관객이 수락하기는 어렵다. 슬픔을 상투적으로 자극하는 창작물에 관객은 짜증을 내고, 슬픔을 모르는 창작자가 값싸게 설계한 슬픔 메커니즘에 관객은 분노한다. 그런데 관객의 정서적 방어벽을 완벽하게 허물고 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어버리는 영화라면, 그건 관람을 권할 만한 영화라는 뜻일까? 영화 속 슬픔이 진짜에 가까워질수록, 관객이 느끼는 강렬한 고통도 진짜와 구별하기 어려워진다면.

영화 <생일>은 세월호 사건을 다룬 마지막 영화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더 나은 영화를 상상하기가 도저히 어렵기 때문이다. <터널>처럼 정치적 서사를 영리하게 차용한 장르 영화가 있었고, 전적으로 정치적이며 전적으로 세속적인 다큐멘터리들이 있었고, ‘세월호’란 단어의 정치적 상징성에 흉측하게 의존하는 영화도 더러 있었지만, 세월호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정치적 색깔을 완전히 비워낸 영화는 <생일>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정치적 접근을 의심하고 경계하는 유가족의 관점에서 시작한 영화는 끝내 정치적 개입이나 각성을 보여주지 않은 채 조촐한 생일잔치로 막을 내린다. 정치적 비극을 개인적 비극으로 되돌리는 임무를 작정하고 수행하듯이.

대통령은 그때 뭘 하고 있었나? 해경은 왜 제때 출동하지 않았나? 언론은 왜 잘못된 보도를 내보냈나? 혹시 세월호를 누군가 고의적으로 침몰시킨 건 아닌가? 국가란 대체 무엇인가? 격앙된 창작자들이 내내 잊고 있었던 단순한 질문을 이 영화는 환기시킨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어떤 일인가.

영화가 보여주는 비정치적이고 개인적인 상상력은 너무나 강력해서 지난 정치적 구호들의 효과를 초라하게 만들어버린다. 어쩌면 애초에 슬픔이 개인마다 스며들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세월호 사건은 정치적 미궁에 빠진 것인지도 모른다. 세월호 사건을 다룬 기사마다 흔히 보이는 지겹다는 댓글을 내가 처음으로 본 건 사건 발생 딱 이틀 뒤였다. 사회면에서 정치면으로 사건이 넘어갔을 때. 그 뒤로 5년간 지치지도 않고 지겨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지겨움에는 지겨움을 못 느끼는가? 지겨움을 대체할 새 감정이 발명되어야 할 지경이다.

가장 최근의 세월호 기사는 기무사가 세월호 침몰 다음날부터 정권 위험 관리 차원에서 유족들을 사찰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이제 쓴웃음이 나올 뿐이다. 너무 영악했던 나머지 너무 어리석었던 권력이었다. 기무사의 자원을 총동원해도 달성할 수 없는 정치적 과제들을 훨씬 쉽게 돌파할 수 있었을 터다. 대통령이 보여주는 개인적인 슬픔, 개인적인 표정, 개인적인 관심, 개인적인 호소, 개인적인 의지만으로도. 하지만 개인적인 것을 다루는 데 미숙했던 권력은 정치적인 것에 대한 노이로제에 사로잡혀 있었고 위험요소를 눈앞에서 제거하는 데 골몰했다. 그 순간 정치적 성격이 명백하게 규정된 재난은 5년째 국회와 정부 사이를 표류하고 있다. 그 시기를 분노와 의심으로 보낸 이들도 있고, 지겨움에 귀를 닫아버린 이들도 있겠지만, 정작 슬픔을 나눈 시간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슬픔이 생략된 비극처럼. 이 사회적 비극의 가장 슬픈 지점이다.

세월호 참사 5주기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여러 차례 입으로 읊어봤지만 솔직히 대부분의 시간을 잊은 채 지낸다. 그래도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 수십번은 더 돌아왔을 당신들의 생일이 떠올라서. 앞으로도 한참을 더 슬퍼할 당신들의 소중한 사람이 떠올라서. 언젠가 한번은 잃게 될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떠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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