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5.01 17:48 수정 : 2019.05.01 19:46

주승현
인천대 통일통합연구원 교수

비무장지대(DMZ) 안에는 분단의 사계절을 겪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 남북이 서로 상대편을 ‘선전마을’로 폄훼해온 비무장지대 내 두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다. ‘자유의 마을’로 불리던 대성동은 비무장지대 남쪽에 있고 ‘평화의 마을’로 선전했던 기정동은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북쪽에서 기정동의 공식 행정명은 판문점리이고 ‘백동’이라는 별칭도 사용하는데, 정전 직후 마을에 100여가구가 살고 있는 데서 유래한다. 나머지 절반이 남쪽의 대성동이다. 결국 한마을에 비무장지대가 들어서고 마을의 중간에 선이 그어지면서 분단마을이 된 것이다. 38선이 생겨난 이후에도 하나의 공동체였던 마을은 한반도 허리를 끊어놓은 휴전선 때문에 졸지에 윗마을에서 살던 큰아버지는 북쪽 사람, 아랫동네에서 살던 작은집은 남쪽 주민이 되는 이산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 비극은 정전된 지 66년이 된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체제경쟁 시절에는 남북이 각기 상대를 ‘선전마을’로 비약했는데 실은 꺼풀만 그랬다. 기정동 사람들은 휴전협정 이전까지 남쪽 지역이었다는 이유로 출신성분에서 불이익을 받았고, 스위치 하나로 굴뚝에 연기가 오르고 시간에 맞춰서 녹음된 개 짖는 소리를 내보낸다는 남쪽의 대성동에는 옛사람들이 한동안 그대로 살고 있었다. 남북이 마을 안에 있는 대형 깃대의 높이로 기싸움을 하던 체제경쟁 시절은 물론, 근래까지 지속한 온갖 화기의 살벌한 사격훈련 소리와 집요한 심리전 방송에도 무표정하고 무덤덤한 일상을 보여준 두 마을의 분절된 이면은 어땠을까.

38선과 휴전선은 이음동의어지만 두 지도를 나란히 놓고 보면 서로 다른 의미와 무게가 금방 드러난다. 해방과 함께 그어진 38선은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미-소가 그은 작전경계선이었다는 의미 외에도 한반도 분단의 시작이라는 비극의 무게가 있다. 그리고 한국전쟁의 결과로 38선을 대신한 휴전선이라는 의미 외에도 서로의 시체와 시체를 밀어붙여 직선의 38선을 곡선의 휴전선으로 변형시킨 적대와 증오의 무게도 있다. 민족을 파괴한 참혹함 앞에서 북쪽에서는 남쪽을, 남쪽에서는 북쪽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시야는 막히거나 흐려졌고 대성동과 기정동의 주민들은 전쟁의 상흔과 분단의 중압을 멍에로 쓴 채 살아왔다.

지난해 이맘때 대성동과 기정동 모두에서 볼 수 있는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판문점은 두 마을 주민들이 농사를 짓던 ‘널문리’ 들판에 전쟁 중에 처음 들어선 장소다. ‘판문점의 봄’ ‘한반도의 봄’이라는 요란한 구호 속에서 지난해에만 3차례의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관심은 집중되고 분위기는 고조됐으나 올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진행된 2차 정상회담 결렬 뒤 기대와 희망이 실망과 부정으로 바뀌는 것 또한 순간이었다. 불신과 적대의 잔혹한 분단사를 돌아볼 때 판문점이라는 표면적 의미로도, 한두번의 만남으로는 무겁고 두꺼운 분단의 무게를 쉽게 들어낼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됐으리.

분단의 사계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성찰의 사계절을 먼저 앞세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 첫번째가 자기 파괴적인 분단에 관한 성찰이며, 두번째가 우리의 상대인 북한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북한과 만들어가야 하는 통합과 통일, 그다음 단계라고 할 수 있는 통일 뒤의 상생은 모두 하나의 연장선상에 있다. 가야 할 길은 너무 멀다. 지금이라도 우리 안의 분단부터 제대로 마주해보자. 대성동과 기정동의 혈육들이 비무장지대에서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묻고 무덤덤해야 했던 실존과 굴절의 그 연원에 서보자.

북쪽의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하던 중에 기정동 사람들을 통해 대성동과의 사연을 알게 됐다. 남쪽에 온 뒤 지금은 종종 학생들과 함께 대성동에서 기정동을 바라본다. 아직도 그들의 아픔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금단의 선이라고 했던 공동경비구역(JSA)에 자유왕래의 공간이 생기고, 금단의 땅 비무장지대에 둘레길이 생긴다면 그 아픔에 한 발자국이라도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공감세상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