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20 16:06
수정 : 2019.05.20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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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검찰청 깃발.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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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관련 논의가 한창일 때였다. 공수처에서 수사와 기소 등을 담당하는 사람을 무엇으로 불러야 하는지가 문제가 됐다. ‘공수처 검사’라고 했더니 몇몇이 난색을 표했다. 한편에서는 “검사가 아닌데 검사라고 해도 되느냐”고 했고, 또 다른 편에서는 “완전히 다른 존재인데 검사라고 부르면 이미지가 나쁘지 않겠느냐”는 식이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검사란 누구인가.
헌법에서는 검사가 구속과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는 사람으로 딱 두번 등장한다. 검찰청법에서는 수사하고 재판을 거는 사람이 검사이고, 변호사시험 합격 등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 중 대통령이 임명하는 사람이 검사다. 이렇듯, 검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임명되는지는 모두 법률로 정해진다. 따라서 법이 바뀌면 임용 방식이나 업무 범위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공수처에서 수사와 기소를 담당하는 사람도 ‘검사’라 부르기로 정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조금만 더 상상해본다. 비단 공수처뿐이 아니라 ‘경찰청’ 안에 지금 검사들과 똑같은 자격을 갖추고 똑같은 일을 하는, 일정한 법률적 자격을 갖춘 사람을 ‘검사’라고 부르기로 정한다 해도, 안 될 일은 아니다.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입법부 논의를 거친다면 가능하다. 헌법 위반도 아니고 민주주의를 해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나오는 검찰 주장의 근저에는 “검찰이 해야만 하는 역할이 있다”는 발상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믿음은 너무 여러 차례 배신당했다. 정부 성격을 불문하고 반복적으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그건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는 진단이 나왔고 많은 사람들이 그 원인을 힘의 집중에서 찾았다. 누구를 기소할지 말지, 영장을 청구할지 말지, 수사를 덮을지 말지. 모두가 한곳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그렇게 반복적으로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하여 견제장치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수사권 조정의 출발이다. ‘수사’와 ‘공소유지’라는 역할을 어떻게 나누어야 남용되지 않을지 섬세하고 신중한 조정을 하려는 것이다.
물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찰을 믿을 수 있느냐, 오히려 경찰에 힘이 집중되는 것 아니냐 등등. 완벽한 견제장치를 처음부터 만들어내지 못할 수 있고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수사라는 ‘일’을 어떻게 잘 나눌 것인지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제도는 조금씩 바로잡으면 된다. ‘힘’의 문제로 보아 검찰에서 경찰로 힘이 넘어가는 것으로만 보면 답이 찾아질 리 없다.
아니, 어쩌면 문제 읽기부터 틀렸는지도 모르겠다. ‘검찰’이라는 말부터 바로잡아야 할 수도 있다. 우리 법에는 ‘검찰’이라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검찰사무와 검찰총장이라는 검사의 직위가 있고 검사들이 모여 있는 기관을 뜻하는 검찰청은 있지만 ‘검찰’은 없다. 형사재판을 하다 보면 검사가 ‘저희 검찰에서는…’이라고 말할 때가 많다. 어색한 말이다. 수사하고 재판을 하는 사람은 ‘검찰’이 아니라 ‘검사’다. 그 상대편에는 수사받는 피의자와 재판받는 피고인, 변호인이 있고 판결하는 판사가 있다. 이렇게 모두 형사절차 안에서 각자의 역할이 있을 뿐이다. 검사 한 사람이 자신을 ‘검찰’이라고 말할 때 전체로서의 조직이 책임지겠다는 생각도 있겠지만 동시에 ‘검사’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다.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하나의 검찰’이 있다는 생각에 든든하기보다는 두렵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가, 어떻게 임명되는가…. 검사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여러 갈래가 있겠고, 여러 법조문이 이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검찰’이 아니라 검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의무를 정한, 이 답이 가장 좋다.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검찰청법 4조 2항)
김진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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