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 유전학자
칼럼 |
[공감세상] 뇌과학의 함정 / 김우재 |
뇌를 연구하는 과학을 뇌과학으로 정의하면, 미국 브레인 이니셔티브 공동의장 코리 바그먼은 뇌과학 프로젝트를 이끌 자격이 없다. 그는 뇌 없이 302개의 신경세포만을 가진 예쁜꼬마선충을 연구한다. 그는 신경과학자다. 선충 연구자가, 21세기 미국의 거대한 국가과학 뇌연구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뇌과학을 대중에게 소개해온 송민령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자연의 일부인 ‘뇌를 탐구하는 학문’을 말할 때는 신경과학(Neuroscience)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그는 한국에 유독 뇌과학이라는 말이 널리 퍼졌다고 말한다. 실제로 외국 학계에서 뇌과학, 즉 ‘브레인 사이언스’(Brain Science)라는 말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뇌과학은 융합, 통섭, 창조경제, 4차 산업혁명 등 말의 외피에 집착하는 한국적 작명법이다. 뇌과학이 신경과학보다 더 잘 팔릴 것 같아서다.
신경과학은 신경세포가 겨우 2만개도 안 되는 군소, 즉 바다달팽이에게 빚지고 있다. 기억에 대한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에릭 캔델은 1962년 군소 시냅스의 강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군소의 신경세포는 몇개 안 되는데다, 크기가 커서 여러 실험에 용이했다. 바로 그 바다달팽이로, 캔델은 기억이 시냅스에 저장된다는 사실과, 시냅스에 분출되는 신경전달물질이 기억을 조절하는 방식을 발견해 신경과학을 분자생물학의 패러다임으로 끌어들였다. 바로 그때부터, 신경과학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캔델은 하버드에서 현대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다 여자친구를 만나 삶의 변화를 겪는다. 그의 여자친구 아버지는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였고, 어머니 쪽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가까운 사이였다. 캔델은 정신분석가로 진로를 바꿔 평생을 살 뻔했으나, 뉴욕대에서 탁월한 신경생물학자들을 만나면서, 군소에 빠져들었다.
정신분석학은 인문과 의학, 심리학과 유사과학의 경계에 놓인 논쟁적인 학문이다. 최재천 교수는 도정일과의 대담에서 정신분석학을 강하게 공격했었다. 정신분석학과 신경과학 모두를 경험했던 캔델은, 몇편의 논문과 인터뷰를 통해, 정신분석학이 경험적 근거와 특히 생물학적 설명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생물학이 밝혀낸 신경과학적 근거들로 정신분석의 효과를 설명할 수 없다면, 정신분석학은 과학이 수긍할 만한 새로운 설명 방식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캔델이 정신분석가로 살았다면, 우린 아직도 우울증 치료제를 개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뇌를 구성하는 신경회로의 지도를 만드는 게, 미국 브레인 이니셔티브의 주요 목표다. 한 생물종의 신경회로 지도가 완성된 건, 예쁜꼬마선충이 처음이다. 코리 바그먼이 이 프로젝트의 공동의장이 된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인간 뇌의 비밀을 풀어가기 위해 연합한 과학자들은, 뇌와 관련되어 있다고 모든 걸 다 융합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이미 그 근거가 잘 밝혀진 과학적 현상들과, 지난 수백년간 잘 작동해왔던 과학적 방법론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할 뿐이다. 그러니 브레인 이니셔티브는 각 종교의 수련법이나 명상, 투시력, 염력 같은 현상은 연구하지 않는다. 브레인 이니셔티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 중인 모델로는 초파리도 있다. 미국의 자넬리아 연구소는 초파리의 뇌 커넥톰과 행동을 연결시켜, 인간의 행동과 신경회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 중이다.
뇌과학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대중을 현혹할 수 있는 유사과학의 잔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겨우 인간의 뇌를 조금 이해했을 뿐인데, 누군가 뇌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수련법이 있다며 비즈니스를 한다면, 의심해보는 게 좋다. 한국에서 제대로 된 과학적 방법론으로 뇌과학을 연구하는 정부기관은 대구에 있는 한국뇌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뇌과학연구소뿐이다. 유행하는 과학일수록, 더욱 의심하는 게 좋다. 최근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한번 속았으니, 뇌과학이라는 말은 조심하는 게 좋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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