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회학 연구자 수년 전 한 공용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으면서 놀란 적이 있다. 문 안쪽에 청소노동자의 이름이 얼굴 사진과 함께 공개되어 있었다. 얼굴과 이름을 걸고 화장실 청소 상태를 책임진다는 뜻이겠지만 매우 불편했다. 불필요한 신상정보를 공개해서 한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의 무게를 전가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는지 몇년 사이 이 불필요한 사진과 이름 공개는 사라졌다. 어떤 얼굴은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권을 파괴하기 위해 노출을 강요당한다. 얼굴이 있는 개인은 인격적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미술사에서 여성 자화상이 하나의 장르가 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여성의 얼굴이 공적 영역에 드러나기 그만큼 힘들었던 역사적 맥락에서 비롯한다. 2년 전 출간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얼굴과 이야기를 담은 사진집 <얼굴들>도 소수자의 서사를 복원하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얼굴 드러내기는 그 얼굴의 주체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냐에 따라 다른 맥락을 가진다. 권력을 드러내는 얼굴이 있다면 투쟁을 위해 알리는 얼굴이 있고, 한편 응징의 대상으로 불려나오는 얼굴이 있다. 최근 몇몇 잔혹한 범죄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했다. 신상공개의 목적은 범죄 예방이라 한다. 만약 흉악범이 형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오는 시기라면 ‘범죄 예방’이라는 명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구속된 피의자는 어차피 사람들이 일상에서 만날 수 없기에 그의 얼굴은 범죄 예방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얼굴 공개의 또 다른 이유는 범죄에 대한 경각심 고취라 한다. 이 또한 의구심이 생긴다. 특히 제주도 펜션에서 전남편을 살해한 피의자의 얼굴이 공개되는 과정은 꽤 자극적이었다. 일부 언론은 “이르면 오늘 오후 얼굴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며 흥미진진한 일처럼 얼굴 공개에 대한 관심을 부추겼다. 피의자가 긴 머리를 앞으로 내리고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리자 “얼굴 공개 불발”이라고 쓴다. 끝내 포기하지 않고 “유치장에서 조사실 이동 중 포착, 검은색 긴소매 상의에 체육복 차림”이라고 시시콜콜 알리며 공개된 얼굴은 사방에 뿌려졌다. 관련 사건을 전하는 티브이 뉴스마다 우리는 피의자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얼굴 공개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경각심은 뭘까. 게다가 응징의 대상이 실제로 공정하지 않다. 피해자가 남성일 때 피의자의 잔혹함이 더욱 부각된다. 시신 훼손 때문이라면 이 역시 많은 남성들이 여성 피해자에게 저질러온 행위다. 굳이 특정 사건을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간단한 검색을 통해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여성 피해자-남성 가해자의 구도에서는 범죄의 잔인함을 상대적으로 덜 느낀다. 서스펜스의 거장이라 불리는 히치콕 영화에는 다양한 유형의 살인이 등장한다. 그중 다수가 여성 살해이며 그 살인 사건 중에는 아내 살해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레베카> <이창> <현기증> <다이얼 엠(M)을 돌려라> <나는 고백한다> 등 많은 영화가 아내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는 남성을 다룬다. 혹은 <열차 안의 낯선 자들>처럼 간접적으로 아내 살해의 주제를 전하는 작품도 있다. 이처럼 아내 살해는 살인에서 별도의 카테고리를 형성할 정도로 자주 발생하는 하나의 ‘문화’다. 한국에서 살인 사건의 20%가 남편의 아내 살해다. 이들의 신상을 공개한다면 너무 많아서 사회가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아내 살해는 살해 동기를 가해자 입장에서 성실하게 밝혀 여성들에게 메시지를 준다. 상추를 통째 밥상에 올리면 죽을 수 있다, 이혼을 요구하면 죽을 수 있다, 늦게 들어오면 죽을 수 있다…. 여성은 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될 때나 피해자가 될 때나 이 사회에서 메시지를 받는다. 잔혹한 범죄 행위에 대한 처벌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얼굴 공개는 그 실효성도 검증되지 않았거니와 공개의 기준이 공정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더구나 피의자의 가족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건강한 경각심은 더욱 찾기 어렵다.
칼럼 |
[공감세상] 얼굴을 보여라 / 이라영 |
예술사회학 연구자 수년 전 한 공용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으면서 놀란 적이 있다. 문 안쪽에 청소노동자의 이름이 얼굴 사진과 함께 공개되어 있었다. 얼굴과 이름을 걸고 화장실 청소 상태를 책임진다는 뜻이겠지만 매우 불편했다. 불필요한 신상정보를 공개해서 한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의 무게를 전가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는지 몇년 사이 이 불필요한 사진과 이름 공개는 사라졌다. 어떤 얼굴은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권을 파괴하기 위해 노출을 강요당한다. 얼굴이 있는 개인은 인격적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미술사에서 여성 자화상이 하나의 장르가 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여성의 얼굴이 공적 영역에 드러나기 그만큼 힘들었던 역사적 맥락에서 비롯한다. 2년 전 출간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얼굴과 이야기를 담은 사진집 <얼굴들>도 소수자의 서사를 복원하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얼굴 드러내기는 그 얼굴의 주체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냐에 따라 다른 맥락을 가진다. 권력을 드러내는 얼굴이 있다면 투쟁을 위해 알리는 얼굴이 있고, 한편 응징의 대상으로 불려나오는 얼굴이 있다. 최근 몇몇 잔혹한 범죄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했다. 신상공개의 목적은 범죄 예방이라 한다. 만약 흉악범이 형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오는 시기라면 ‘범죄 예방’이라는 명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구속된 피의자는 어차피 사람들이 일상에서 만날 수 없기에 그의 얼굴은 범죄 예방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얼굴 공개의 또 다른 이유는 범죄에 대한 경각심 고취라 한다. 이 또한 의구심이 생긴다. 특히 제주도 펜션에서 전남편을 살해한 피의자의 얼굴이 공개되는 과정은 꽤 자극적이었다. 일부 언론은 “이르면 오늘 오후 얼굴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며 흥미진진한 일처럼 얼굴 공개에 대한 관심을 부추겼다. 피의자가 긴 머리를 앞으로 내리고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리자 “얼굴 공개 불발”이라고 쓴다. 끝내 포기하지 않고 “유치장에서 조사실 이동 중 포착, 검은색 긴소매 상의에 체육복 차림”이라고 시시콜콜 알리며 공개된 얼굴은 사방에 뿌려졌다. 관련 사건을 전하는 티브이 뉴스마다 우리는 피의자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얼굴 공개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경각심은 뭘까. 게다가 응징의 대상이 실제로 공정하지 않다. 피해자가 남성일 때 피의자의 잔혹함이 더욱 부각된다. 시신 훼손 때문이라면 이 역시 많은 남성들이 여성 피해자에게 저질러온 행위다. 굳이 특정 사건을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간단한 검색을 통해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여성 피해자-남성 가해자의 구도에서는 범죄의 잔인함을 상대적으로 덜 느낀다. 서스펜스의 거장이라 불리는 히치콕 영화에는 다양한 유형의 살인이 등장한다. 그중 다수가 여성 살해이며 그 살인 사건 중에는 아내 살해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레베카> <이창> <현기증> <다이얼 엠(M)을 돌려라> <나는 고백한다> 등 많은 영화가 아내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는 남성을 다룬다. 혹은 <열차 안의 낯선 자들>처럼 간접적으로 아내 살해의 주제를 전하는 작품도 있다. 이처럼 아내 살해는 살인에서 별도의 카테고리를 형성할 정도로 자주 발생하는 하나의 ‘문화’다. 한국에서 살인 사건의 20%가 남편의 아내 살해다. 이들의 신상을 공개한다면 너무 많아서 사회가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아내 살해는 살해 동기를 가해자 입장에서 성실하게 밝혀 여성들에게 메시지를 준다. 상추를 통째 밥상에 올리면 죽을 수 있다, 이혼을 요구하면 죽을 수 있다, 늦게 들어오면 죽을 수 있다…. 여성은 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될 때나 피해자가 될 때나 이 사회에서 메시지를 받는다. 잔혹한 범죄 행위에 대한 처벌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얼굴 공개는 그 실효성도 검증되지 않았거니와 공개의 기준이 공정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더구나 피의자의 가족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건강한 경각심은 더욱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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