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MBC) 드라마 피디 드라마 촬영장에 가보면 늘 벌서는 자세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마이크 맨이다. 정확한 대사 전달을 위해 최대한 배우의 입 가까이 마이크를 대야 하고, 그러기 위해 긴 장대를 두 팔로 들고 일한다. 힘들게 일하는 마이크 맨 덕분에 소음이 많은 거리에서도 대사는 깨끗하게 녹음된다. 밤에도 자체발광하듯 빛나는 배우들의 미모는 조명팀의 헌신으로 완성된다. 좁은 골목에서 촬영을 하려면, 조명 설치할 공간이 부족해 남의 집 담벼락 위에 조명을 세울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막내가 올라가 장비를 붙들고 있어야 한다. 밤샘 촬영이 이어지던 어느 날, 조명팀 막내가 담장 위에서 꾸벅꾸벅 조는 걸 봤다. 졸다 균형을 잃으면 큰 사고가 나고, 자칫 무거운 조명 장비를 놓치면 밑에 있는 배우가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위험해도 졸린 건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 그날 촬영을 서둘러 마쳤는데도,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장비 철수하고 방송사로 돌아가면 새벽 4시, 근처 찜질방에서 씻고 눈 잠깐 붙인 뒤 6시30분에는 나와야 한다. 촬영 버스는 아침 7시에 출발하니까. 드라마 제작진 중에는 젊은 나이에 과로사로 세상을 뜨는 경우도 있다. 수면 부족이 건강에 좋을 수는 없다. 되도록 야간 촬영을 줄이고 최소한의 휴게 시간을 보장하려고 노력한다. 그게 나도 살고, 동료도 살리는 길이다. 얼마 전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에서 연락이 왔다. 드라마 제작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1인시위에 나와 줄 수 있냐고. 드라마 감독으로서 참 쉽지 않은 선택이다. 자칫 동료 감독에 대한 비난이나 배신으로 보일 수 있다. 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할 때, 조합원을 동원하는 게 항상 어려웠다. 집행부 임기가 끝날 때 속으로 다짐했다. 노동조합 집행부가 하는 부탁은 거절하지 말자고. 그게 싸우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1인시위에 나간 뒤, 선배를 만났다. “아이고, 그 자리는 나가지 말지 그랬어. 나중에 본인이 드라마 연출할 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텐데.” 나를 걱정해서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그 순간 진심으로 좌절했다. 내가 1인시위에 나선 건, 내가 일하는 현장에서만큼은 노동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나름의 다짐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밤을 새워 찍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 드라마 제작 현장의 노동은 개선되지 못한다. 은유 작가가 쓴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읽었다. 노동 현장에서 죽어가는 특성화고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고등학생 이민호군은 제주도 생수 공장에 현장실습 나갔다가 죽음을 당했다. 이건 어른들의 잘못이다. 위험한 일을 시킨 것도 잘못이고, 그걸 감독하지 못한 것도 잘못이다.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죽는다. 민호의 아버지는 교육청에 아들의 추모비를 세워달라고 했다. 공무원들이 출퇴근하면서 추모비를 보고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없게끔 매일 다짐하라고. 교육청은 난색을 표했다. 그런 선례를 남기면, 크고 작은 사고가 생길 때마다 세우는 추모비로 교육청 마당이 가득 찰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또 한번 좌절한다. 사고가 안 나게 노력을 해야지, 사고가 나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구나. 이 나라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공장에서 죽어가는 게 당연한 나라구나. <팩트풀니스>라는 책을 보면, 표지 뒷장에 세계 건강 도표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기대수명으로 보나 1인당 국내총생산(GDP)으로 보나 상위권이다. 이런 나라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후진국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이들이 많다.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나라가 망하고, 밤샘 촬영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아이들이 공장에서 일하다 죽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법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사람을 바꾸는 일이다. 세상은 언제 좋아지는가? 세상은 이미 좋아졌다. 우리 안의 후진성만 극복하면 된다.
칼럼 |
[공감세상] 내 마음속 후진국 / 김민식 |
<문화방송>(MBC) 드라마 피디 드라마 촬영장에 가보면 늘 벌서는 자세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마이크 맨이다. 정확한 대사 전달을 위해 최대한 배우의 입 가까이 마이크를 대야 하고, 그러기 위해 긴 장대를 두 팔로 들고 일한다. 힘들게 일하는 마이크 맨 덕분에 소음이 많은 거리에서도 대사는 깨끗하게 녹음된다. 밤에도 자체발광하듯 빛나는 배우들의 미모는 조명팀의 헌신으로 완성된다. 좁은 골목에서 촬영을 하려면, 조명 설치할 공간이 부족해 남의 집 담벼락 위에 조명을 세울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막내가 올라가 장비를 붙들고 있어야 한다. 밤샘 촬영이 이어지던 어느 날, 조명팀 막내가 담장 위에서 꾸벅꾸벅 조는 걸 봤다. 졸다 균형을 잃으면 큰 사고가 나고, 자칫 무거운 조명 장비를 놓치면 밑에 있는 배우가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위험해도 졸린 건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 그날 촬영을 서둘러 마쳤는데도,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장비 철수하고 방송사로 돌아가면 새벽 4시, 근처 찜질방에서 씻고 눈 잠깐 붙인 뒤 6시30분에는 나와야 한다. 촬영 버스는 아침 7시에 출발하니까. 드라마 제작진 중에는 젊은 나이에 과로사로 세상을 뜨는 경우도 있다. 수면 부족이 건강에 좋을 수는 없다. 되도록 야간 촬영을 줄이고 최소한의 휴게 시간을 보장하려고 노력한다. 그게 나도 살고, 동료도 살리는 길이다. 얼마 전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에서 연락이 왔다. 드라마 제작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1인시위에 나와 줄 수 있냐고. 드라마 감독으로서 참 쉽지 않은 선택이다. 자칫 동료 감독에 대한 비난이나 배신으로 보일 수 있다. 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할 때, 조합원을 동원하는 게 항상 어려웠다. 집행부 임기가 끝날 때 속으로 다짐했다. 노동조합 집행부가 하는 부탁은 거절하지 말자고. 그게 싸우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1인시위에 나간 뒤, 선배를 만났다. “아이고, 그 자리는 나가지 말지 그랬어. 나중에 본인이 드라마 연출할 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텐데.” 나를 걱정해서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그 순간 진심으로 좌절했다. 내가 1인시위에 나선 건, 내가 일하는 현장에서만큼은 노동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나름의 다짐이다. 그런데 드라마는 밤을 새워 찍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 드라마 제작 현장의 노동은 개선되지 못한다. 은유 작가가 쓴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읽었다. 노동 현장에서 죽어가는 특성화고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고등학생 이민호군은 제주도 생수 공장에 현장실습 나갔다가 죽음을 당했다. 이건 어른들의 잘못이다. 위험한 일을 시킨 것도 잘못이고, 그걸 감독하지 못한 것도 잘못이다.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죽는다. 민호의 아버지는 교육청에 아들의 추모비를 세워달라고 했다. 공무원들이 출퇴근하면서 추모비를 보고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없게끔 매일 다짐하라고. 교육청은 난색을 표했다. 그런 선례를 남기면, 크고 작은 사고가 생길 때마다 세우는 추모비로 교육청 마당이 가득 찰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또 한번 좌절한다. 사고가 안 나게 노력을 해야지, 사고가 나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구나. 이 나라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공장에서 죽어가는 게 당연한 나라구나. <팩트풀니스>라는 책을 보면, 표지 뒷장에 세계 건강 도표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기대수명으로 보나 1인당 국내총생산(GDP)으로 보나 상위권이다. 이런 나라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후진국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이들이 많다.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나라가 망하고, 밤샘 촬영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아이들이 공장에서 일하다 죽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법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사람을 바꾸는 일이다. 세상은 언제 좋아지는가? 세상은 이미 좋아졌다. 우리 안의 후진성만 극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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