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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14 17:01 수정 : 2019.08.15 13:43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실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 나누기: 연장(휴일) 근로 포함 법정 노동시간 상한 52시간 전면 이행’ ‘목표 및 우선순위: 최우선 과제’ ‘이행기간: 임기 내’(더불어민주당 19대 대통령선거 후보 문재인 선거공약서 02).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이 대표발의를 하고, 금태섭, 유동수, 어기구, 최운열, 조응천, 윤후덕, 서영교, 민병두, 전혜숙, 김병욱, 고용진, 윤준호, 안호영, 김현권, 김철민, 김병관, 이규희, 김한정, 정성호, 노웅래, 안규백 의원이 공동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개정안 내용은 5인 이상 사업장까지 주 52시간 초과근로 금지 제도를 적용하는 시기를 2024년까지 늦추겠다는 것이다. 2018년 2월 개정된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그 시점은 2021년이었다. 개정안이 제안한 시행시기 2024년은 문재인 정부의 ‘임기 내’가 아니라 임기 종료 이후다. 그러니 이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공약을 파기하는 내용이다.

정당이 선거에서 공약한 사항을 선거 뒤 변경할 수는 있다. 하지만 공약 변경을 하려면 책임있는 절차와 설명, 대국민 설득의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더구나 이번 경우처럼 공약 이행을 목적으로 이미 입법한 내용을 다시 개정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정당 차원의 책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변경해야 할 이유를 당 차원에서 성실히 밝혀야 한다.

개정안에는 ‘산업계의 시장 상황과 맞지 않는 법 적용으로 정책 보완이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자리 축소와 범법자 양산 등 내년 전면 시행을 놓고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산업계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되어 있다. 이것이 집권당 의원 22명이 발의한 법안의 입법 취지라니 놀랍기만 하다. 2018년 2월 현행 근로기준법 개정을 주도한 것은 당연하게도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었다. 그렇다면 ‘산업계의 시장 상황과 맞지 않는 법 적용’을 한 건 누구이고 ‘정책 보완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책임은 또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가히 유체이탈 화법이라 할 만하다. 이 개정안에는 당시 입법을 하고 다시 변경을 해야만 하는 민주당의 책임에 관해 그 어떤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더욱이 이번 개정안 발의가 문제인 것은, 발의자가 ‘당론’이 아니라 ‘개인 소신’이라고 밝힌 부분이다. 대표발의자 이원욱 의원은 집권당 원내 지도부 중 원내대표 다음으로 높은 2인자, 원내 수석부대표다.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최운열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정책을 입안하고 원내에 제출하는 법안을 심의하며 당정협의 및 정부 정책을 검토하고 대안을 제시’(더불어민주당 당헌 제43조)할 권한을 갖는 정책위원회 소속이며, 6명밖에 없는 정책조정위원장 중 한명이다. 원내 수석부대표와 당 정책을 총괄해야 하는 책임을 지닌 제3정책조정위원장이 대선 공약 ‘최우선 과제’를 파기하는 법안을 당헌상 정해진 절차에 따른 당내 논의도 진행하지 않고 그냥 ‘개인 소신’으로 발의했다? 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둘 중 하나다. 여론의 ‘간을 보겠다’는 의도이거나, ‘당론’이라는 책임을 회피한 채 얼렁뚱땅 추진하겠다는 의도다. 둘 중 무엇이든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 책임있는 정당의 원내 지도부가 대선 공약을 파기하려 했다면 최소한 당내 정책조정 과정을 거치고 당정협의를 거쳤어야 한다. 그리고 집권당과 정부가 함께 국민들에게 솔직히 책임을 인정하고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그 당의 대표는, 원내대표는, 정책위원회는, 또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원욱, 최운열 의원은 대선 공약 파기가 ‘개인 소신’이라면 책임있는 당직을 내려놓고 말하라. 야당도 아닌 집권당 원내 지도부가 사사로이 대선 공약을 파기하는 법안을 내놓고 당 지도부는 일언반구도 없는 정당에 국민들이 앞으로 뭘 보고 신뢰를 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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