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원인이야 어쨌든, 과정이야 어쨌든 집회를 통한 집단적 의사 표현은 시민의 권리다. 지난 3일 광화문 집회든 5일 서초동 집회든 할 말 있는 시민들의 집단적 의사 표현이다. 2016~17년 촛불집회 정점을 쳤던 인원을 능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연이어 열리면서 한국 사회 전체를 당황시키기는 했지만, 이건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감당해야 할 조건이다. 2016~17년 다섯달여간 연인원 1700만명(주최 쪽 추산)이 참여한 촛불집회의 경험은,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의 공유재가 되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설문조사로 확인된 바에 따르면, 2016년 이전까지 ‘내가 정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느끼는 시민은 대략 10명 중 3명 수준이었다. 그러나 2016~17년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그 수치는 급증했고 2019년 현재 10명 중 4명 혹은 그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필요하면 언제든 촛불을 들겠다’는 시민의 수도 2016년에 비해 크게 줄지 않았다. 이념적으로 진보층이든 보수층이든 가리지 않으며, 연령집단별로도 큰 차이가 없다. 정치에 대한 능동적 의사 표현에 관한 한, 한국 사회는 확실히 2016년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런 현상을 바람직하다고 보든 아니든 간에, 이젠 되돌아갈 수 없다. 누구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의견을 표명하고 교환하며 집단행동을 조직할 수 있는 사회,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는 여기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원내정치를 해나가야 할 정당과 정치인들은 이런 현실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 ‘내 편’만 광장을 차지하는 게 아니다. ‘내 편의 광장은 정당하고 상대편의 광장은 부당하다’는 편협한 시선으로는 제도정치의 지체를 벗어날 수 없다. 4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광온 최고위원은 ‘어제 한국당의 폭력집회는 당의 총동원, 종교단체 등 이질적 집단을 동원해 만든 군중동원집회’라고 했다. 3일 광화문 집회의 한 축은 자유한국당이 주최하긴 했지만, 자유한국당 당원들도 정치적 의견을 가지고 표현의 권리를 가진 시민들이다. 종교단체 주최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집회 끝에 폭력 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그 사건 하나로 당일 광장에 모인 수많은 시민의 의견이 폄훼될 수 있는 게 아니다. 7일 이인영 원내대표는 ‘서초동 촛불집회는 완벽한 촛불시민혁명의 부활’이었고 ‘자유한국당 광화문 집회와 극명하게 대비된다’고 했다. 시민들이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것과 원내정당의 지도부가, 그것도 집권당의 지도부가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건 다른 문제다.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의 의견을 경청한다. 정부와 집권당도 노력하겠다. 검찰의 수사를 지켜봐 달라’고 할 수는 없나? 7일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나온 그 당 지도부의 발언은 훨씬 더 고전적(?)이다. 황교안 대표는 5일 서초동 집회에 대해 ‘친문 세력의 관제시위’이며 ‘문재인 대통령과 친문 세력이 거대한 인민재판의 소용돌이에 (한국 사회를) 빠뜨리고 있다’고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관제데모가 아니라 황제데모’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서초동에 모인 그 수많은 시민이 모두 관에 의해 동원되었다고 믿는 건지 궁금하다. 자유한국당은 집권하면 그들이 ‘친문세력’이라고 정의한 시민들을 배제하고 민주정치를 해나갈 작정인가? 서초동 집회가 ‘인민재판’이면 광화문 집회는 뭔가? 황 대표의 생각대로 그 시민들이 몽땅 ‘친문세력’이라고 하더라도, 광화문에 모인 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서초동에 모인 시민들도 표현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검찰개혁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자유한국당은 검찰개혁을 더 열심히 해나가겠다. 다만 조국 장관은 퇴임해야 한다’고 품위 있게 말할 수는 없나? 민주주의의 조건이 바뀌었다. 원내정당들과 정치인들이 하루빨리 적응하기를 바란다.
칼럼 |
[공감세상] 민주주의의 조건이 바뀌었다 / 서복경 |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원인이야 어쨌든, 과정이야 어쨌든 집회를 통한 집단적 의사 표현은 시민의 권리다. 지난 3일 광화문 집회든 5일 서초동 집회든 할 말 있는 시민들의 집단적 의사 표현이다. 2016~17년 촛불집회 정점을 쳤던 인원을 능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연이어 열리면서 한국 사회 전체를 당황시키기는 했지만, 이건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감당해야 할 조건이다. 2016~17년 다섯달여간 연인원 1700만명(주최 쪽 추산)이 참여한 촛불집회의 경험은,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의 공유재가 되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설문조사로 확인된 바에 따르면, 2016년 이전까지 ‘내가 정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느끼는 시민은 대략 10명 중 3명 수준이었다. 그러나 2016~17년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그 수치는 급증했고 2019년 현재 10명 중 4명 혹은 그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필요하면 언제든 촛불을 들겠다’는 시민의 수도 2016년에 비해 크게 줄지 않았다. 이념적으로 진보층이든 보수층이든 가리지 않으며, 연령집단별로도 큰 차이가 없다. 정치에 대한 능동적 의사 표현에 관한 한, 한국 사회는 확실히 2016년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런 현상을 바람직하다고 보든 아니든 간에, 이젠 되돌아갈 수 없다. 누구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의견을 표명하고 교환하며 집단행동을 조직할 수 있는 사회,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는 여기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원내정치를 해나가야 할 정당과 정치인들은 이런 현실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 ‘내 편’만 광장을 차지하는 게 아니다. ‘내 편의 광장은 정당하고 상대편의 광장은 부당하다’는 편협한 시선으로는 제도정치의 지체를 벗어날 수 없다. 4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광온 최고위원은 ‘어제 한국당의 폭력집회는 당의 총동원, 종교단체 등 이질적 집단을 동원해 만든 군중동원집회’라고 했다. 3일 광화문 집회의 한 축은 자유한국당이 주최하긴 했지만, 자유한국당 당원들도 정치적 의견을 가지고 표현의 권리를 가진 시민들이다. 종교단체 주최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집회 끝에 폭력 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그 사건 하나로 당일 광장에 모인 수많은 시민의 의견이 폄훼될 수 있는 게 아니다. 7일 이인영 원내대표는 ‘서초동 촛불집회는 완벽한 촛불시민혁명의 부활’이었고 ‘자유한국당 광화문 집회와 극명하게 대비된다’고 했다. 시민들이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것과 원내정당의 지도부가, 그것도 집권당의 지도부가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건 다른 문제다.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의 의견을 경청한다. 정부와 집권당도 노력하겠다. 검찰의 수사를 지켜봐 달라’고 할 수는 없나? 7일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나온 그 당 지도부의 발언은 훨씬 더 고전적(?)이다. 황교안 대표는 5일 서초동 집회에 대해 ‘친문 세력의 관제시위’이며 ‘문재인 대통령과 친문 세력이 거대한 인민재판의 소용돌이에 (한국 사회를) 빠뜨리고 있다’고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관제데모가 아니라 황제데모’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서초동에 모인 그 수많은 시민이 모두 관에 의해 동원되었다고 믿는 건지 궁금하다. 자유한국당은 집권하면 그들이 ‘친문세력’이라고 정의한 시민들을 배제하고 민주정치를 해나갈 작정인가? 서초동 집회가 ‘인민재판’이면 광화문 집회는 뭔가? 황 대표의 생각대로 그 시민들이 몽땅 ‘친문세력’이라고 하더라도, 광화문에 모인 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서초동에 모인 시민들도 표현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검찰개혁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자유한국당은 검찰개혁을 더 열심히 해나가겠다. 다만 조국 장관은 퇴임해야 한다’고 품위 있게 말할 수는 없나? 민주주의의 조건이 바뀌었다. 원내정당들과 정치인들이 하루빨리 적응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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