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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9 18:24 수정 : 2019.12.10 12:18

김원영 ㅣ 변호사·<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차별금지법이 생기면 공산주의자와 동성애자들이 교회를 접수하고 목사님은 설교를 하다 감옥에 끌려간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차별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을 지니고, 필요하다면 금지하는 제도(법률)를 갖춘 사회가 기독교인을 포함한 모든 종교들인들이 살기에도 훨씬 좋은 공동체다.

동성애자인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어린 시절 교회 목사에게 강제로 (이성애자로의) 전환치료를 당한 경험이 있어 기독교인 전체를 혐오하게 되었다고 해보자. 그는 자신의 회사에 기독교인들을 채용할 생각이 없다. 대놓고 교회를 다니는 직원을 배제할 수는 없으므로 월요일 휴무제를 실시하고, 일요일 오전 출근하여 전 직원이 모이는 타운홀미팅을 개최하기로 한다. 기독교인 직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주일예배에 불참하거나 회사를 그만둔다. 이 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도 성실한 기독교 신앙생활을 해온 청년 ㄱ은 이 상황이 부당하다. 그는 어디에 호소해야 할까?

ㄱ은 (일부 기독교인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로 달려가야 한다. 국가가 종교를 이유로 차별하면 헌법재판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민간기업에서 종교로 불이익을 준다면 그가 차별을 겪었다고 호소하기에 효과적인 기관은 인권위뿐이다. 그런데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은 간접차별, 즉 위 사례처럼 특정 종교인이라는 이유로 직접 차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종교인들이 사실상 참여할 수 없는 업무환경을 통해 고용관계에서 결과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일을 금지하는 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 ㄱ이 받은 피해는 차별로 인정받기가 어렵다. 설령 인권위가 전향적 법해석으로 간접차별을 인정해 피해자에게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라고 권고하더라도, 말 그대로 권고의 효력이 있을 뿐이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논의하고 요구해온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종교에 대한 간접차별을 인정하며,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시정기구를 도입하고자 한다. 위 상황에서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ㄱ이 입은 피해는 간접차별에 따른 것으로 인정받고, 최고경영자와 해당 기업에는 ㄱ과 같은 기독교인들을 배제할 수 있는 행위를 중지하라는 적극적인 조치 또는 그에 상응하는 손해배상을 명령할 수도 있다.

2015년 통계청이 실시한 종교 분포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56.1%는 종교가 없고, 특히 20대는 64.9%가 무교였다. 2005년 종교가 없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 인구의 47.1%였음을 생각해보면, 무교의 비율은 날로 증가하는 중이다. 수십년 안에 한국 사회에서 종교인들은 오히려 소수자의 위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소수자가 된다는 것은, 그저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회사나 학교 생활에서 불이익을 입고, 식당 앞에서는 ‘노 크리스천 존’ 같은 표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말과 같다. 차별 경험은 정말이지 불쾌하고, 삶의 잠재력을 갉아먹는다. 나는 장애인이므로 이런 경험의 전문가다.(믿어도 좋다) 기독교인들이 절대 이런 일을 겪지 않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차별금지법은 차별금지의 ‘영역’(고용, 교육, 재화와 용역의 제공 등)을 별도로 설정하기에 일각의 주장처럼 설교할 때 동성애를 언급하면 잡혀가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성소수자를 포용하기를 바라지만, 설령 포용하지 않더라도 종교영역 내부로 차별금지법의 효과는 미치지 않는다.(물론 종교행사라도 특정인을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비난한다면, 이는 현행 형법상 모욕죄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차별금지법과 무관하다.) 요컨대 종교와 무관한 직장생활에서, 거리에서, 학교에서, 타인을 혐오하고 배제하고자 하는 충동을 억제할 정도의 시민의식만 있다면, 차별금지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더없이 중요한 제도다.

나는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보장받으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를 희망한다. 아마도 소수자였던 적이 없을 김진표 의원님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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