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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08 18:29 수정 : 2014.07.08 18:29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노동조합. 참 인기없고 낡은 이름이다. 전세계 모든 나라에서 노조조직률이 하락하는 현상을 보면, 21세기에 노조는 사라질 조직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가만 내버려 두어도 점차 사회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는 이 조직을 인정받기 위해 아직 한국의 노동자들은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 지난번 결성된 삼성전자서비스노조가 그러했다. 그뿐 아니라 6만명의 조합원을 거느리며 15년 이상 활동해온 전교조가 해고자를 조합원에 포함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법외노조가 되었다. 서구에서는 지난 두세기 전에 노조 만들다가 모반죄로 처벌을 당하거나 사용자의 칼과 총에 맞아 죽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노조 자체가 곧 좌익, 즉 없애도 좋은 단체로 취급당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한국은 헌법상의 노동기본권이 실제로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나라라고 생각해 왔다. 사용자가 단체교섭을 거부해도 처벌되는 일은 거의 없고, 노조 활동을 하다가 해고당해도 복직은 하늘의 별 따기다. 한국 최고의 기업인 삼성에서는 아직 정규직원이 노조를 만들 수 없고, 공무원노조도 법 밖에 있다. 노동자들의 마지막 무기인 단체행동을 함부로 감행했다가는 업무방해죄로 처벌당하기 십상이며, 민사상의 손해배상 청구를 당해서 조합원 개개인의 삶이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

그러니 대역죄가 없다고 해서, 한국에서 노조가 인정되고 있으며 노동기본권이 보장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87년 민주화로 한국에서는 기업 단위 노조만 주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단결권도 절반만 인정된 상태다. 즉 전체 피고용자의 10%만이 조직되어 미국과 더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거의 최하위의 노조조직률을 기록하는 한국에서 애초부터 기업별 노조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절반의 노조였다고 볼 수 있다.

나는 한국의 기업별 노조는 ‘제도적 어용노조’라고 본다. 즉 노조는 회사의 경영에 일절 개입할 수 없고, 자신의 운명을 회사의 존립과 이익에 전적으로 의탁하고 있다. 더구나 이 기업 단위 노조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기 회사와 종속관계에 있는 다른 회사의 피고용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착취를 묵인할 가능성이 있다. 전교조처럼 자신들의 직업적 활동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주는 교육정책 일반을 단체교섭 안건으로 올릴 수 없는 불구적인 이 조직은 오직 조합원의 처우나 이익에만 신경 쓰게 되고, 학생과 학부모 등 다른 교육주체를 무시하고 자기 이익만 내세울 가능성도 있고, 실제 그런 일도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 노조 활동을 하다 해고된 9명을 조합원 명부에서 제외하라는 노동부의 행정 명령은 전교조한테 노조임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독일노총의 조합원 20%는 고용관계에 있지 않은 실업자들이고, 스웨덴의 경우 실업자나 자영업자의 비중은 더욱 높다. 한국에서 복수노조가 허용된 이후 새로 설립된 노조의 70%는 어용노조, 즉 회사의 간부들이나 사용자 편에 선 사람들이 조직한 것이라고 한다. 이거야말로 노조의 자주성을 완전히 부인한 ‘노조 아님’의 전형이지만, 노동부나 법원은 이들 어느 한 노조한테도 노조 아님을 통보한 적이 없다.

결국 노동부와 법원은 공공의 이름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지만, 평소 전교조를 목에 가시처럼 여겨오면서 전교조의 불법성을 외쳐온 부패 사학, 교육계 상층부 등 사익집단이 가장 기뻐하고 있다. 노조는 조합원의 사적 이익에 기반을 두지만, 활동을 하는 순간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공정성, 국가권력의 올바른 집행을 감시하는 공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해고자들 대부분은 바로 학교비리 척결에 앞장섰다가 부당하게 해고된 사람들이었다. 사익이 공익을 가장하고, 정치가 법을 가장하고 있다. 자주성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국어사전을 새로 써야 할 판이다.

결국 87년 민주화가 이루어낸 절반만의 노조, 절반만의 민주주의가 위태위태하게 지탱되다가 이 박근혜 정부에서 결정타를 맞은 것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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