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앤지 트라이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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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 드라마 <앤지 트라이베카>
앤지 트라이베카(라시다 존스)는 엘에이(LA) 경찰청 소속의 베테랑 형사다. 이른 새벽마다 신체 단련으로 하루를 시작할 정도로 성실한 그는, 수사 과정에서 사적인 감정 개입을 싫어하는 이성주의자이며, 한번 맡은 사건은 놓치지 않고 해결하는 완벽주의자다. “고독한 늑대”라는 별명을 지닐 만큼 단독 활동을 더 선호하나, 파트너와의 협업에서도 어김없이 능력을 발휘한다. 나열한 특징만 봐도 전형적인 미국 수사물 속 ‘모범 형사의 정석’처럼 보인다. 단지, 앤지 트라이베카가 왜소한 체구의 젊은 여성이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미국 <티비에스>(TBS)의 신작 드라마 <앤지 트라이베카>는 매회 다른 사건을 해결하는 범죄수사물이자 직업인으로서의 형사에 초점을 둔 형사물이다.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그렇다. 진짜 본질은 풍자 코미디다. 풍자의 화살이 부패한 사회와 무능력한 공권력이 아니라, 형사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장면들과 진부한 관습을 겨냥한다는 점에 이 드라마의 핵심 재미가 있다.
풍자의 수위는 신랄하다기보다는 익살맞은 쪽에 가깝다. 가령 형사물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검시실 장면을 보자. 1회 ‘시장 협박 사건’에서 법의학자 에델바이스 박사(앨프리드 몰리나)는 협박편지에 지문을 남기지 않고 조사하기 위해 인형 뽑기 기계를 동원하고, 돈을 요구하는 협박범의 심리를 필적으로 분석한 뒤 ‘돈이 궁해서’라는 하나 마나 한 결론을 내린다. 건물 앞에 내세운 ‘법의학 선물용품점’이라는 간판처럼 장난스럽기 그지없는 묘사인데, 형사물이 은밀히 신화화해온 수사의 권위를 소소하게 해체하는 쾌감이 있다.
앤지 트라이베카와 새 파트너 제이 가일스(헤이스 맥아더)의 관계도 웃음을 자아내긴 마찬가지다. 가일스와의 첫 공동수사에서 ‘네 불우한 유년 시절 얘기 따윈 듣기도 싫고, 우울증 얘기도 신경 안 쓴다’던 트라이베카가 막 지어낸 듯한 ‘첫 파트너와의 가슴 아픈 이별’을 떠벌리는 장면은 최신 형사물의 필수 공식으로 자리한 ‘트라우마’와 그 작위적인 진지함을 우스꽝스럽게 비튼다. 이 외에 산보 같은 추격전, 자백 같은 취조 신, ‘강 건너 불구경’ 같은 대치 신 등 수사물에서 익히 보아온 장면들이 모두 장난스러운 요리감이 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풍자는 수사물의 마초성에 대한 은근한 폭로다. 책상 앞에서 면도를 하다 반장의 부름에 투덜대며 일어나는 모습이나, 현장에서 돌아와 유니폼 셔츠를 거칠게 벗어젖히는 모습 등 너무나 익숙해서 자연스러웠던 장면들이, 작은 체구의 젊은 여형사 앤지 트라이베카의 재연을 통해 이질적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은 기존의 형사물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 장르였나를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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