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0.28 19:29
수정 : 2016.10.31 08:19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드라마 <엑소시스트>
“자네는 조종당하고 있네. 자네가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말이지.” 올해는 유독 인간의 영혼을 쥐고 흔드는 미지의 존재가 등장하는 오컬트 소재 미국 드라마가 많았다. 천사와 악마 사이에서 태어난 선교사의 이야기를 그린 <프리처>, 악령의 목표가 된 남자의 엑소시즘 드라마 <아웃캐스트>, 악마 루시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루시퍼>, 오컬트 영화의 고전인 <오멘>의 스핀오프 드라마 <데미안> 등이 모두 올해 등장한 작품들이다.
여기에 역대 최고 오컬트 걸작 <엑소시스트>의 리메이크작까지 가세했다. 최근 미국 <폭스 채널>과 국내 케이블 <캐치온>에서 동시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엑소시스트>는 1973년의 동명 원작 영화를 다시 만든 작품이다. 두명의 가톨릭 사제가 악령에 빙의된 소녀를 구하기 위해 구마의식을 한다는 원작의 기본 설정을 유지한 채 대부분의 이야기를 새롭게 각색했다. 시카고 한 작은 성당의 젊은 신부 토마스(알폰소 에레라)는 꿈에서 어린 소년에게 구마의식을 행하는 신부를 보게 된다. 때마침 신도 앤절라(지나 데이비스)가 딸의 빙의를 의심하며 상담을 청해오자 토마스는 꿈속의 신부를 수소문한다. 그는 현대의 성전기사단으로, 세계 곳곳에서 악령과 싸워온 마커스 신부(벤 대니얼스)였다. 앤절라 가족을 덮친 악령은 갈수록 공포스러운 실체를 드러내고 토마스와 마커스는 함께 이에 맞서기로 한다.
<엑소시스트>는 꽤 영리한 리메이크작이다. 원작의 명성에 기댄 안이함도, 반대로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예 재창조로 가려는 강박도 보이지 않는다. 지상파 채널의 특성상 호러의 표현 수위는 제한하는 대신, 원작에 깔린 심리 스릴러로서의 성격을 강화함으로써 또다른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가령 앤절라 가족은 원작의 한부모 가정과 달리 부모와 자매로 이뤄진 소위 ‘정상 가족’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깊은 상처가 자리한다. 아버지 헨리(앨런 럭)는 뇌손상 증세로, 능력있는 사업가 앤절라는 말할 수 없는 과거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큰딸 캐서린(브리앤 하위)은 성소수자로서의 아픔, 막내 케이시(해나 카설카)는 인기 많은 언니에 대한 복합적 감정을 품고 있다. 두 신부의 내면도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고아 출신 마커스는 바티칸에서 학대에 가까운 혹독한 훈련을 받았고, 멕시코 빈민 가정 출신 토마스는 생계 때문에 선택한 사제직과 믿음 사이에서 흔들린다.
|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
각 인물의 내면과 정치사회적 배경을 차근차근 드러내며 그 위에 악의 음모를 조금씩 덧붙여나가는 플롯은 갈수록 깊은 몰입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전략은 원작이 지닌 공포의 근원을 잘 짚어낸 것이기도 하다. 오컬트 장르이면서도 악에 대한 신화적 차원의 묘사를 넘어 심리적, 사회적 관점 등 다층적 차원으로 접근한 것이 원작의 힘이었다. 악은 뿔 달린 악마의 형상으로만 떠도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원인에서 태동한다. 공포스럽더라도 그것을 인식해야 극복도 가능하다. 악을 끊임없이 추상화하려는 시도야말로 진정한 악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