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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04 19:26 수정 : 2016.11.04 19:50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영국 드라마 <텅 빈 왕관: 리처드 2세>

셰익스피어 원작의 <텅 빈 왕관>은 2012년 런던올림픽 개최와 올해 셰익스피어 타계 400주기를 기념해 제작된 <비비시>(BBC) 드라마 시리즈다. 역사적 순간을 기리는 프로젝트답게 영국을 대표하는 스타들이 총출동해 더 화제를 모았다. 리처드 2세, 헨리 4세, 헨리 5세의 집권기를 다룬 시즌1에서는 벤 휘쇼, 제러미 아이언스, 톰 히들스턴이, 헨리 6세와 리처드 3세를 다룬 시즌2는 톰 스터리지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각각 타이틀롤을 맡았다. 전체 시즌 제작에는 영화 <아메리칸 뷰티>, <로드 투 퍼디션>, <007 스카이폴> 등을 연출한 명장 샘 멘디스가 참여했다.

역사로 박제된 인물에 인간적 입체성을 부여한 셰익스피어 원작의 핵심정신을 고스란히 되살린데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영화와 같은 독립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 영국 드라마에서 손꼽히는 걸작 시리즈로 평가받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호평을 받는 이야기가 첫 에피소드 <리처드 2세>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전체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인 권력의 허망함과 왕관 아래 인간 실존의 고뇌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스스로를 신의 아들이라 여기는 권력의 정점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서의 허무한 말로까지, 왕의 다양한 표정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벤 휘쇼는 이 연기로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바프타) 티브이 어워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역사 속에서 리처드 2세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백성의 연민을 받았던 왕에서 실정을 반복하며 끝내는 폭군이 되어 반란으로 밀려나는 치욕의 군주로 기록된다. 드라마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그의 비참한 말년에 집중했다. 공중에 떠 있는 그리스도상에서 시작해 그 아래 왕좌에 앉은 리처드 2세의 모습까지 서서히 내려오는 롱테이크 오프닝신부터가 ‘몰락의 서사’를 예고한다. 동시에 ‘천상과 연결된 왕권’이라는 리처드 2세의 특권의식도 함께 말해준다. 이 왕권신수설에 대한 집착은 그가 몰락하는 결정적 원인이기도 했다. 영국 의회 민주주의의 시발점이 된 ‘대헌장’(Magna Carta)이 탄생한 뒤로도 한 세기가 지난 시기에 신성한 왕권을 주장한 시대착오적 전제정치가 결국 귀족들의 반발과 민심 이탈을 불러온 것이다. 병적인 자기애와 아첨꾼으로 이뤄진 측근들도 불만을 가중시켰다.

극에서 “타락한 왕”이자 무능한 왕인 리처드 2세가 군주로서 위엄을 발휘하는 유일한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몰락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장면이다. 성으로 쳐들어온 수많은 군대를 홀로 대면하고 민심이 지지하는 지도자에게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밝히는 장면은 적들의 존중까지 이끌어낸다. “과인이 굴복해야 할까? 그렇게 할 것이오. 과인이 퇴위해야 할까? 그렇게 할 것이오…. 내 거대한 왕국 내놓고 작은 무덤 하나 얻으리다.” 그렇게 집착하던 왕관을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인간의 존엄을 되찾는 최후는 ‘텅 빈 왕관’이라는 제목에 담긴 역설적 함의와 권력 무상에 대한 불멸의 역사적 교훈을 보여준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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