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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2.02 19:26 수정 : 2016.12.02 20:49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드라마 <블랙 미러3-인간과 학살>

에스에프(SF) 수작으로 호평받았던 옴니버스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가 2년 만에 미국 드라마로 돌아왔다. 이번 시리즈부터 제작을 맡은 넷플릭스는 지난 10월21일 시즌3을 한꺼번에 공개하고, 내년 상반기에 시즌4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제작사가 바뀌고 기존 시즌보다 에피소드가 늘어난 점을 제외하면 큰 변화는 없다. 시리즈를 이끌어왔던 찰리 브루커가 이번에도 각본을 담당하고 있고, 미디어가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일관된 비판 의식도 여전하다.

총 6개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시즌3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제5화 ‘인간과 학살’ 편이다.

‘벌레’로 지칭되는 수수께끼 생명체와 인류의 전쟁을 그린 이 에피소드는 <블랙 미러>의 전체적인 디스토피아 세계관 안에서도 제일 참혹하고 비극적이다. 과학기술 발전이 초래하는 미래의 ‘새로운 풍경’을 그리는 대부분의 에피소드와 달리, 과거에서부터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비극의 역사를 은유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스트라이프(말라카이 커비)는 인류의 적 ‘벌레’들과의 첫 전투를 앞두고 있다. 괴물과 같은 형상을 지닌 ‘벌레’들은 인류를 오염시키는 위험하고 불결한 존재이고, 군대는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공격력을 향상시키는 첨단 시스템을 이식하여 무기로 삼는다. 스트라이프는 첫 전투에서 ‘벌레’를 두 마리나 없애는 맹활약을 펼치지만, 그 이후 시스템 오류로 인한 이상 현상에 시달린다. 급기야 ‘벌레’들의 은신처에 침투하는 중요한 작전에서 시스템은 완전히 작동을 멈추고 스트라이프는 눈앞에 펼쳐진 충격적인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인간과 학살’이 묘사하는 가상과 현실의 관계는 에스에프 장르에서는 이미 익숙한 세계다. 특히 후반부에 스트라이프에게 닥친 딜레마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앞에 둔 주인공 네오의 상황과도 꼭 닮았다. 이야기가 흥미로워지는 순간은 이러한 가상의 설정이 아니라 실제의 역사를 대입할 때다. 시스템의 설계자가 설명하는 ‘벌레’의 정의는 핍박당하는 소수자의 비극적 운명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마녀사냥으로 살육당한 여성들, 미국의 원주민과 흑인들, 아우슈비츠의 유대인들, 각국을 떠도는 난민들 등 억압의 역사는 끝없이 반복된다.

지금 이곳의 현실도 예외는 아니다. 가령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가장 큰 분노를 불러온 것은 권력자들이 체제 유지를 위해 정부 기관과 미디어를 동원해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을 ‘유족충’이라 부르며 고립시켰다는 사실이다. 기득권의 이익에 저해가 된다면 누구나 ‘~충’이 되어 탄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의 역사에서 익히 목격해왔다. ‘인간과 학살’이 <블랙 미러>의 그 어떤 에피소드들보다 동시대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다가오는 이유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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