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3.03 19:45
수정 : 2017.03.03 21:30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슈퍼 샐러리맨 사에나이씨>
최근 국내 방송가에서는 한국방송 <김과장>, 에스비에스 <초인가족 2017> 등 샐러리맨의 비애를 다룬 드라마들이 화제다. 특히 <초인가족 2017>은 경제성장기에 중산층을 대표했던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의 고용환경이 갈수록 혹독해지며 과도한 노동력을 요구받는 현실을 ‘초인’이란 단어로 풍자해 눈길을 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평균 근로시간과 최하위 수준의 행복지수를 기록 중인 한국 직장인들의 아이러니한 현실을 지칭하는 적절한 표현으로 보인다.
우리보다 앞서 샐러리맨 신화의 위기를 맞이한 일본의 경우 이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 오피스물의 역사는 더 오래되었을뿐더러 형식도 다양하다. 올해 1분기 드라마인 <엔티브이>(NTV)의 <슈퍼 샐러리맨 사에나이씨>는 그 일본 오피스물의 다양한 현주소를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다. 만화 <도라에몽>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후지코 후지오의 연재만화를 각색한 드라마는 1970년대의 원작을 현재로 옮겨와 한때 일본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추앙받았던 샐러리맨들의 위축된 현실을 코믹판타지로 풍자하고 있다.
주인공 사에나이(쓰쓰미 신이치)는 건설회사의 중년 샐러리맨이다. 무언가 책임지는 것을 싫어하며 소심하고 안전지향적 삶을 추구하는 탓에 만년 계장으로 머물러 있다. 집에서도 주눅 든 모습이긴 마찬가지다. 아내는 존재감 없는 남편의 회사 생활보다 자신의 사생활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고등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마저 아빠의 깃털 같은 무게감을 인정한다. 어느 날 정체불명의 노인이 나타나 사에나이에게 슈퍼맨이 될 생각이 없는지 묻고, 그는 딸에게 도시락을 빨리 가져다주겠다는 소소한 이유로 슈퍼맨 슈트를 착용한다. 하지만 곧 슈트를 벗어버리려던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슈퍼맨으로서의 활약은 자꾸만 연장된다.
<슈퍼 샐러리맨 사에나이씨>의 직장인 현실 풍자는 제목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슈퍼 샐러리맨’은 신비한 노인이 사에나이에게 샐러리맨 하는 김에 슈퍼맨도 겸해보라는 의미에서 급조한 단어지만, 이미 ‘일을 엄청 잘하는 직장인’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즉 샐러리맨과 슈퍼맨의 이중생활이라는 황당한 제안은 많은 직장인들이 감당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해 후생노동성에서 장시간 노동과 과로 실태를 조사해 공표한 ‘과로사 백서’나 직장인이 월평균 용돈이 부족해 점심 값을 줄이고 있다는 기사 등이 큰 반향을 일으킬 정도로 샐러리맨들의 위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두터워지는 추세다. <슈퍼 샐러리맨 사에나이씨>는 그러한 흐름을 잘 반영한 작품이다.
씁쓸한 사실은 한국의 노동시간이 이처럼 심각한 일본의 현실을 훌쩍 넘어선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2016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근로자는 일본보다 약 50일 정도 더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측면에서 국내 오피스 드라마 유행도 이제부터가 시작인 듯하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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