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3.31 19:34
수정 : 2017.03.31 20:23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검사의 숙원>
동틀 녘 바다 위로 한 남성의 시신이 천천히 떠오른다. 투신자살로 추정되는 시신의 신원은 거물정치인 뇌물수수 의혹 사건의 주요 참고인으로 밝혀진다. 정치인 측은 그의 자살이 도쿄지검 특수부의 강압적 수사에 의한 것이라며 거센 공세를 펼치고, 핵심 단서를 쥔 참고인을 잃은 특수부는 커다란 위기에 빠진다. 수사의 원점에서 다시금 대대적인 수사가 필요했던 특수부는 전국 지방검찰청에 인력 지원을 요청하고 사카타 사다토(가미카와 다카야)도 여기에 합류한다.
지난해 <티브이 아사히>에서 방영된 <검사의 숙원>은 일명 ‘사카타 시리즈’로 유명한 특집 드라마다. 정의로운 법조인 사카타 사다토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베스트셀러 연작 소설을 영상화한 이 시리즈는 2015년 <최후의 증인>을 시작으로 두 번째 작품 <검사의 사명>이 연이은 호평을 얻으며 드라마 팬들 사이에 기대되는 프로젝트로 떠올랐다. <최후의 증인>이 변호사 사카타 캐릭터를 소개하는 도입부에 해당했다면, <검사의 사명>은 사카타가 검사로 활약했던 과거를 다루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그의 남다른 신념을 조명했다.
시리즈 3편에 해당하는 <검사의 숙원>은 배경을 도쿄지검 특수부로 옮겨 한층 거대한 권력과 맞서는 사카타의 이야기를 그린다. <검사의 사명>에서도 사카타가 담당한 사건에 압력을 가한 전적이 있는 여당 거물 의원이 본격적인 ‘거대 악’으로 등장하고, 같은 변호사였던 사카타 부친의 과거사가 멀티플롯으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하지만 뭐니 해도 제일 흥미로운 순간은 사카타가 치열하게 맞서는 부조리한 권력이 외부의 적만이 아니라 검찰 조직 자체라는 사실이 드러날 때다. 거대한 사회악을 척결하는 최고의 조직이라는 자부심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내부의 모순은 성찰하지 못하는 검찰 집단의 한계가 아웃사이더 사카타의 시선을 통해 예리하게 그려진다.
이러한 작품의 주제는 검찰 조직에 대한 일본 사회의 변화하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2010년 도쿄지검 특수부의 위상을 뒤흔든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의 불기소 처분 사건 이후 일본 내에서는 정의의 상징인 동시에 살아 있는 권력이 된 검찰 조직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작품들이 꾸준히 늘어가는 추세다. 정의롭고 유능한 변호사의 영웅적 활약을 그린 ‘사카타 시리즈’의 인기는 역설적으로 그러한 현실 속에서 이상적인 법조인에 대한 판타지를 대변해주는 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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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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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지금 여기 한국에서 가장 절실한 판타지이기도 하다. 역대 최악의 국정농단 사태가 수면 위로 부상한 이후, 모든 국민들의 관심은 검찰의 엄정한 수사 여부에 쏠렸다. 최근 헌정 사상 세번째 전직 대통령 구속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우려의 시선이 떠나지 않는 것은 검찰 조직을 너무나 잘 아는 또 다른 핵심 권력이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정의 구현이라는 판타지가 현실에도 적용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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